지리산칠암자순례
일시:2022.05.08일
이동거리:16.4km 산행시간:5시간50분(10:00분 출발-15:50분 하산)
코스:음정주차장-양정마을입구-영원사3km이정표-들무골-도로-영원사입구-도솔암(빽)-영원사입구도로-영원사-빗기재-삼정산(빽)-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갈림길-정성재-약수암-능선사면길-실상사-백일상가주차장
↓사월 초파일을 맞아 지리산 칠암자 순례를 하가위해 음정마을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비 탐방로를 이용해 도솔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음정마을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비 탐방로를 못가게 지키고 있다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할수없이 반대 방향인 양정마을 쪽으로 올라 영원사 도로를 이용해 도솔암으로 진행한다
↓양정마을 입구에서 직진한다
↓등산지도
↓등산 트랙지도
↓등산기록
↓1023번 도로 갈림길에서 영원사 방향으로 진행한다
↓도로 갈림길에서 영원사 방향으로 약230여미터 올라와 좌측 마을로 들어오면 이길로 진행 하게된다
↓마을안 끝에서 산으로 등로가 있다
↓영원사로 가는 도로에 합류한다
↓조금 오르면 폐타이어가 있는 이곳에서 좌측 계곡으로 들어가 도솔암에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 와야한다
↓개울을 건너간다
↓도솔암으로 가는 등로
↓좌측이 작전 도로를 따라 비 탐방 등로로 오는 길이다
↓도솔암에서 알리는 안내문
↓도솔암 입구 계단
↓사월 초파일 날에만 개방 한다는 도솔암
↓도솔암은 조계종 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인 영원사의 부속 암자로 청매인오(靑梅印悟)가 수행하던 유서깊은 사찰로 1987년 해인사 혜암 스님이 중창 하였으며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혜안 스님의 원불(願佛)로 모셨으나 도솔암으로 개창 되면서 법당의 주불로 모시고 있다
↓도솔암에서 빽하여 다시 올라갔던 개울을 건너고 있다
↓도로에 합류하여 영원사로 오른다
↓영원사 표지석
↓입구에서 올려다본 영원사
↓영원사 두류선림
↓해인사의 말사인 영원사는 신라 시대에 영원 대사가 창건하여 영원사라고 하였다 영원이 지리산에 토굴을 파고 8년을 계속 참선 수도를 하였으나 깨달음을 얻지못해 산길을 내려 오던중 물없는 산속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노인의 말을듣고 다시 정진해 깨우침을 얻게되어 그 자리에 영원사를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서산 대사와 사명 대사를 비롯해 청매,포광,설파 등 선불교 고승들이 거쳐간 수도 도량이다 삼정산을 배경으로 앞쪽으로는 벽소령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경치가 수료하다 한때는 선방이 100칸이 넘을 정도로 내 지리에서 가장큰 사찰 이었으나 여순 14연대 반란 사건때 반란군의 아지트가 된뒤 한국 전쟁때는 지리산이 유격대와 국군 토벌대 간의 격전지가 되면서 완전히 소실 되었다가 1973년에 새로 지은것이다 여러 고승들이 거쳐간 만큼 인근에 부도가 흩어져 있다 모두 5기의 조선시대 부도가 횡렬로 늘어서 있는 사찰 동편 숲속의 부도군은 함양군 유명 문화재 제445호로 지정 되어있다 이 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설파의 부도는 18세기에 조성된 것이다
↓백초월 스님의 안내문
↓등로는 영원사 안쪽에 있다
↓이정표
↓영원사에서 계곡으로 오른다
↓빗기재 이정표
↓상무주암으로 오르는 능선길
↓삼정산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온다
↓삼정산 헬기장
↓삼정산(1182m)은 삼도봉-토끼봉-명선봉-별바위등-영원령-삼정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국립공원 중북부 능선상의 봉우리로 남원시 산내면과 함양군 마천면의 경계에 있다 뱀사골의 동쪽 산록에 해당되며 만수천과 덕전천의 분수계를 이루는 봉우리 이기도하다 지리산 능선상의 봉우리 이지만 삼정봉이 아닌 삼정산 이라고 부른다 산세가 부드럽고 곳곳에 기암과 고사목,노송들이 어우러져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삼정산 등반 코스는 일명"칠암자순례길"이라고 한다 남원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실상사-약수암을 거쳐 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에 이를수 있고 삼정산을 지나 영원령 쪽으로는 영원사,도솔암이 있다
↓삼정산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지리산 능선
↓상무주암
↓상무주암(上無住庵)은 해인사의 말사이며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약간의 수행 승들과 함께 창건하고 일체의 바깥 인연을 끊고 내관(內觀)에만 힘썼다 이때 보조국사는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가운데 "선이란 고요한 곳에도 있지않고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않고 사량분별(思量分別)하는 그 어느 곳에도 있지않다"고하는 글귀를 읽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뒤 1200년에 조계산 송광사로 옮겨 수선사(修禪寺)를 지었다 보조국사의 대오 이후 이절은 성지가 되어 많은 승려들의 수행처가 되었으나 역사는 뚜렷이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당우는 인법당(因法堂) 만이 있으며 절 왼편에는 작고 불완전한 삼층석탑 1기가 있다 이탑은 고려말의 스승인 각운(覺雲)의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이다 각운이 선문염송설화(禪門捻頌說話)30권의 저술을 완료 하였을때 붓 통속에 떨어 졌다는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서 서광을 발 하였다고 한다
↓상무주암을 뒤로하고 문수암으로 진행한다
↓쉼터
↓쉼터 이정표
↓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문수암
↓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
↓문수암
↓문수암 석굴
↓문수암은 지리산 동쪽에 위치하여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 보이는 해인사의 말사로서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산청 문수암 석가"영산회후불탱"을 소장 하고있는 절이다 절 아래로는 지리산 둘레길 제8코스가 지나가며 길을따라 지리산 태극 종주를 할수있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휴식할수 있고 부처님의 법음을 느낄수있는 아담한 전통 한옥 사찰이다
↓삼불사
↓삼불사는 조선 초기에 창건 되었다는 설은 있으나 사적은 알려지지 않고있다 한국 전쟁의 전화(戰禍)를 입었을 것으로 보며 1960년에 김혜관,오운영 등이 중건하여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삼았으며 중창 초기에는 비구니 승려 20여명이 수행하였으나 현재는 비구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당우로는 관음보살(목조관음보살좌상)을 모신 인법당,독특하고 사례가 없는 8분의 산신을 모시고 있는 산신각(석조 산신상,산신도)근세에 세운 삼층 석탑이 있다
↓삼불사에서 바라본 조망
↓갈림길 삼거리에서 약수암 방향으로 진행한다
↓갈림길 삼거리 이정표
↓약수암으로 내려가는 능선길
↓약수암
↓보물 제421호인 아미타목각 탱화가 모셔져 있는 약수암의 보광전
↓약수암은 금산사의 말사인 실상사의 부속 암자이다 실상사 창건이후 1000년의 세월이 지나 창건된 암자이며 약수암은 1901년(광무5)에 지월 대사가 일당(一堂)을 중수 하였고 1918년에 예암 대유 스님이 개인 재산을 모아 보광전을 다시 세웠다 또한 1937년에 함양의 불자 한정희의 시주금으로 중수하고 1974년에 운영 비구니 스님이 두번에 걸쳐 중수 하였다 경내에는 약수샘이 있어 항상 맑은 약수가 흘러 나온다 약수암에는 목조 팔작 지붕으로 된 보광전과 요사채가 전부이나 보광전 안에 조성된 1782년(정조6)에 만든 보물 제421호인 아미타목각 탱화가(모조품) 봉안 되어있다
↓약수암의 수국
↓약수암의 싸릿문을 나온다
↓약수암 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르지 않고 우측 산길로 들어간다(지름길)
↓약수암으로 올라가는 도로에 합류한다
↓내려온 길
↓갈림길 이정표
↓실상사로 진행한다
↓실상사 입구 이정표
↓실상사 천왕문
↓실상사 종무소
↓연등이 달린 실상사 경내
↓동,서 좌우에 있는 쌍탑인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말 실상사를 처음 지으면서 함께 세운 것으로 높이가 각각 840㎝ 이며 보광전 앞에 나란히 있는 두탑은 양식과 규모가 동일하고 기단 주위에 장대석으로 설정된 탑구안에 탑이 세워진 것이 독특하다 탑의 구조는 이중 기단위에 3층 탑신이 있는 전형적인 신라 석탑으로 특히 상륜부가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다
↓대웅전인 보광전
↓측면에서 본 보광전
↓실상사는 조계종 금산사의 말사이다 실상사 사적기에 의하면 828년(흥덕왕3)에 홍척국사(洪陟國師)가 구산 선문의 하나인 실상 산문을 열면서 창건 했다고 한다 홍척은 도의와 함께 중국 당나라에 건너가 서당 지장선사(智藏禪師)의 선법(禪法)을 받고 귀국하여 홍척은 실상사를 도의는 보림사를 창건하여 선종을 전국에 전파 시켰는데 이를 실상 산파라고 하였다 그의 제자 수철 대사와 편운 대사에 의해 절이 크게 중창되고 선풍을 떨쳤다 창건 당시의 가람은 팔전팔방(八殿八房)으로 대웅전,약사전,장육전,명부전,극락전,등 팔전과 만화,현묘,적연,청심 등 팔방이 있고 그외 불이문,해탈문,천왕문,만세루,종각 등의 당우가 대규모로 조영 되었다 그러나 1468년(세조14) 화재로 대가람의 전각이 모두 전소된 뒤 2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1681년(숙종7) 벽암 대사가 중수하고 300여명의 승려들이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26) 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1882년(고종19)에 다시 소실 되었으나 1884년 월송(月松)등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체적인 가람 배치는 대웅전인 보광전을 중심으로 그앞에 2개의 탑이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평지이탑식(平地二塔式) 이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광전,약사전,극락전,명부전,칠성각 등이 남아있다 중요 문화재로는 백장암 3층석탑(국보제10호),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제33호),수철화상능가 보월탑비(보물제34호),실상사석등(보물제35호),실상사부도,실상사동,서 3층석탑 2기(보물제37호),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보물제38호),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비,백장암 석등,실상사 철조약사불 좌상,백장암 청동은 입사향로,실상사 약수암 목각 불탱 등이있다
↓칠성각
↓이 석등은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든 것으로 각 부분을 팔각형으로 만들어 그시대 석등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석등은 기둥이 둥근 장고(長鼓)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석등과 다르다 지붕위에 또 하나의 작은 원형 지붕을 얹은점 역시 독특하다 받침과 기둥 몸체 등 곳곳에 연꽃을 비롯한 다양한 무늬를 새기어 화려하게 장식 하였다 부처의 자비를 담은 불빛을 온누리에 환하게 비추려는 듯 몸체의 여덟면 모두에 큼직한 사각창을 내었다
↓명부전
↓약사전에는 통일 신라말 지방의 여러 선종 사찰에서 쇠를녹여 많은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 불상은 그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철조여래좌상이 있는데 높이는 2.69m이다 무릎 아래는 복원한 것이며 깨어진 두손도 근래에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여 붙였다 두리뭉실한 머리윤곽 촘촘한 고수머리 원만하고 시원스런 얼굴 넓은 가슴에 갸름한 허리 등으로 보아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근엄하고 딱딱한 표정을 띄운 이 불상은 온유함과 생동감을 보이던 앞 시대의 불상과 달라 신라말 불상의 변천 양상을 가늠케 한다
↓목조 9층 목탑이 있던 자리이다
↓목조 9층 목탑의 안내문
↓범종각
개울의 모습
↓백일 상가지구
↓백일 상가 주차장에서 오늘 산행을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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