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부터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이 서린 이 섬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섬의 모양이 어린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부른다 이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 병원이 있는곳으로 아직도 약700 여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의료진,자원 봉사자 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며 현재 진행형 문화 유산이다 면적은 4.4㎢의 작은 섬이지만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백사장,소록도 해수욕장,일제시대 강제 수용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이 손수 가꾼 중앙공원이 있다 예전에는 녹동항에서 배를타고 10여분을 와야 했지만 2009년 3월2일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자동차로 오갈수있는 섬이되었다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생활모습을 엿볼수있는 생활자료관,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의 시비,소록도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하나이젠키치"원장의 창덕비 등 소록도의 아픈역사를 접할수 있는 곳이다
↓ 소록도 주차장과 소록도 안내소
↓ 소록도의 출장소와 우체국
↓ 소록도 휴게소
↓ 한하운의 시
↓ 멀리보이는 소록대교
↓ 소록도 해수욕장
↓ 소록도 포구
↓ 한센병 환자들이 사는 마을
↓ 수탄장으로 이곳은 직원 지대와 병사 (병원)지대로 나뉘어지는 경계선으로 1950~1970년까지 철조망이 처저 있던곳으로 병원에서는 전염병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 지대에 있는 미감아 보육소에 격리하여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선 도로에서 한달에 한번 면회가 허용 되었다 이때 미감 아동과 부모는 도로 양 옆으로 갈라선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만 하는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
↓ 애환의 추모비로 1945년 8월 22일 해방을 맞아 원생 자치권을 요구하던 84명의 협상 대표단이 이를 거부하는 일본 관리인 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 당했다 참살 56년만인 2001년12월8일 화장 메몰된 현장에서 유골 발굴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찾아 당시 학살당한 현장에 2002년8월22일 상징적인 기념비를 세웠다
↓ 개원 50주년 기념비
↓ 일반인들의 통로
↓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 나 예방령 선포 규정에 따라 직업의자유,거주 이전의자유,이동의자유 등을 박탈 당하고 소록도에 수용된 환자들은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변론의 기회조차 없이 감금,감식,체벌 등의 징벌을 받아야 했으며 강제노역이나 온갖 가학에 굴종케하고 부당한 운영에 대한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으며 출감시에는 예외없이 정관 절제를 하였다고 한다
↓ 1935년에 건립된 검시실은 영안실과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되었고 모든 사망환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곳에서 사망 원인에 대한 해부 절차를 마친뒤 화장후 납골당에 유골로 안치 되었다 "소록도 환자는 3번 죽는다" (한센병 발병,죽은후시신 해부,화장)
↓ 소록도 공원 안내판
↓ 소록도 중앙공원 입구
↓ 소록도 중앙공원은 1936년12월1일 착공하여 3년4개월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쳐 1940년4월1일 완공하고"부드러운동산"이라 불렀다 산림을 깎아 만든 공원 면적은 19800㎡이며 수용된 한센병환자 6만 여명이 강제동원되어 득량만과 완도 및 소록도주변 섬에서 암석을 채석하고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관상수를 반입하여 식재하였다 광복후 "소록도중앙공원"으로 변경되었으며 1971년과 1972년 공원 확장이 이루어져 25000㎡에 100여종의 나무가 심어져 있다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한센병은낫는다"라는 구라탑과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의 보리 피리가 새겨진 시비,공덕비가 있다
↓ 중앙공원
↓ 다미안 공적비
↓ 구라탑
↓ 미카엘 공적비
↓ 히말라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