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적대봉(고흥거금도)과 소록도

은 척 2015. 3. 17. 10:59

적대봉(592m)

일시: 2015.03.15일               08:10분 덕천동 부민병원앞 출발               차량이동시간: 3시간10분 소요

도상거리: 8.5km                 산행시간: 3시간(11:15분 출발-14:15분 하산)

코스: 오천리-363봉-446봉이정표-홍연갈림길-적대봉-마당목재-샘터-파성재

오늘 산행은 3시간 정도 소요 되었으며 돌아오는 길에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소록도를 둘러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 산행들머리

↓ 오천항


↓ 등산지도

↓ 오천항

↓ 363봉능선

↓ 446봉 이정표

↓ 홍연마을 갈림길 이정표

↓ 적대봉정상

↓ 적대봉 봉화대

↓ 적대봉에서 바라본 조망




↓ 적대봉 정상에서




↓ 정상 30m지점 아래 이정표


↓ 마당목재



↓ 마당목 재에서

↓ 하산길 소원탑

↓ 파성재 주차장


↓ 소록도 안내소

↓ 보리피리 휴게소

↓ 한센인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

↓ 소록도에서 바라본 소록대교

↓ 수탄장으로 이곳은 직원 지대와 병사(병원)지대로 나뉘어지는 경계선으로 1950~1970년까지 철조망이 처져있던 곳으로 병원에서는 전염병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 지대에 있는 미감아 보육소에 격리하여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선 도로에서 한달에 한번 면회가 허용 되었다 이때 미감 아동과 부모는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만 하는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탄식의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

↓ 애환의 추모비로 1945년8월22일 해방을맞아 원생 자치권을 요구하던 84명의 협상 대표단이 이를 거부하는 일본 관리인 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 당했다 참살 56년만인 2001년12월8일 화장 메몰된 현장에서 유골발굴 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찾아 당시 학살당한 현장에 2002년8월22일 상징적인 기념비를 세웠다

소록도는 일제 시대부터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이서린 섬으로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 하다고하여 소록도라 부른다 이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 소록도 병원이 있는곳으로 아직도 700여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의료진,자원 봉사자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며 현재 진행형 문화 유산이다 면적은 4.4㎢의 작은 섬이지만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백사장,소록도 해수욕장,일제시대 강제 수용 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이 손수가꾼 중앙 공원이있다 예전에는 녹동항에서 배를타고 10여분을 와야했지만 2009년3월2일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자동차로 오갈수있는 섬이 되었다 소록도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생활모습을 엿볼수있는 생활자료관,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의시비,소록도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하나이젠키치"원장의 창덕비 등 소록도의 아픈역사를 접할수있는 곳이다

↓ 안쪽에는 한센인들이 살고있는 마을로 출입이 금지 되어있다

↓ 1935년에 건립된 검시실로 영안실과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되었고 모든 사망환자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곳에서 사망 원인에대한 해부 절차를 마친뒤 화장후 납골당에 유골로 안치되었다 "소록도 환자는 3번죽는다"(한셈병발병,죽은후 시신해부,화장)

↓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 나예방령 제6조 및 같은법 시행규칙 제8조의 규정에 따라 설치된 일제 강점기 인권 탄압의 상징물이다 붉은 벽돌과 육중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과 북 두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된 H자 형태로 방은 철창이 설치 되어있고 각실의 한쪽 마루 바닥을 들어 올리면 변기가 나오는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있다 한센 환자들은 조선 나예방령에 따라 직업의자유,거주이전의자유,이동의자유 등을 박탈 당하였으며 소록도에 수용된 환자들은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변론의 기회 조차없이 이곳에서 감금,감식,금식,체벌등의 징벌을 받아야했고 강제 노역이나 온갖 가학에도 굴종케하고 부당한 요양소 운영에 대한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무수히 이곳에서 사망 하거나 불구가 되었으며 출감시에는 예외없이 정관 절제를 당하였다고 한다 해방이후 이곳은 격리실 또는 보호실로 불리었으며 1973년 이후 내부를 일부 개조하여 신체 부자유자의 가정사로 한동안 사용 되기도 하였다

↓ 소록도 중앙공원은 1936년12월1일 착공하여 3년4개월 동안의 공사 기간을 거쳐 1940년4월1일 완공하고"부드러운동산"이라 불렀다 산림을깎아 만든 공원 면적은 19800㎡이며 수용된 한센병환자 6만여명이 강제동원 되어 득량만과 완도 및 소록도 주변 섬에서 암석을 채석하고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관상수를 반입하여 식재하였다 광복후 "소록도중앙공원"으로 변경 되었으며 1971년과 1972년 공원 확장이 이루어져 25000㎡에 100여종의 나무가 심어져있다 미카엘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 하고"한센병은낫는다"라는 구라탑과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의"보리피리"가 새겨진 시비,공덕비가있다

↓ 중앙공원

↓ 구라탑

↓ 개원 40주년 기념비

↓ 온갖 강압적인 수단으로 8년9개월 동안 소록도를 관리 하였던 일본인 수호원장의 안내판

↓ 소록도 자료관

↓ 전시관

↓ 전시관에 있는 자료로 우리나라 최초로 한센병 환자들을 국가가 관리 하였던 세종대왕과 한센은 노르웨이의 세균학자 이며 의사이다 1873년에 나결절의 세포에서 한센균을 발견하여 자기의 이름을 따라 한센병이라 하였으며 한센병이 유전이나 전형병이 아니라 단순한 전염병임을 밝혀냈다

↓ 수탄장에서 미감 아이와 한센병 부모들이 면회하는 장면

↓ 전시실의 자료들


한센병은 한센균에 의해 발생되는 면역학적 질환이다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대개 호흡기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센균의 잠복기는 수년에서 수십년 정도로 길다 환자의 면역 상태에 따라 다양한 증세가 나타 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센병에 걸리지 않으며 면역력이 약한 극히 일부의 사람에게만 발병하는 질환으로 한센병 환자와 접촉 하는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한다

↓ 학교와 성당

↓ 1916년 5월에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을 전신으로 1949년 5월 중앙나요양소,1957년12월 소록도갱신원,1960년7월1일 국립 소록도 병원으로 개편되었다 1968년11월8일 소록도에 국립 나병원을 신설하면서 산하에있던 국립익산병원(구 익산소생원)국립칠곡병원(구 칠곡애생원),국립부평병원(구 부평성해원)을 모두 폐지하였다 1977년 부설 간호보조원 양성소를 설치하고 1982년12월31일 국립소록도 병원으로 개칭하였다 보건복지부 소속 기관으로 설립당시는 한센병 환자의 강제격리 수용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현재는 한센병 환자의 진료,치료를 담당하고 치료후 사회복귀를 위한 직업보도,후생사업,한센병에 관한 연구를 기본 업무로 하고있으며 섬 전체가 병동의 일부로 7개마을에 각각 치료소를 설치하여 의료진이 근무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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