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816m)
일시: 2015.04.11일 07:30분 덕천동 부민병원앞 출발 차량이동시간: 4시간 소요
도상거리: 9km 산행시간: 4시간40분(11:50분 출발-16:30분 하산)
코스: 주차장-천장골매표소-천장골-남매탑-삼불봉-자연성능-관음봉-동학사계곡-은선폭포-동학사-일주문-매표소-주차장
↓ 천장골입구
↓ 만개한 벗꽃
↓ 등산지도
↓ 등산트랙지도
↓ 등산기록
↓ 남매탑
1400여년전 신라 선덕여왕 원년에 당승 상원 대사가 이곳에와서 움막을치고 기거하며 수도 할때였다 비가 쏟아지고 뇌성 벽력이 천지를 요동하는 어느날 밤에 큰범 한마리가 움집앞에 나타나서 입을크게 벌렸다 대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은채 염불에만 전심하는데 범은 가까이 다가오며 신음하는 것이었다 대사가 눈을뜨고 목안을 보니 인골이 목에걸려 있었으므로 이를 뽑아주자 호랑이는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리고 여러날이 지난뒤 백설이 분분하여 사방을 분간할수 조차 없는데 전날의 범이 한처녀를 물어다놓고 가버렸다 대사는 정성을 다하여 기절한 처녀를 회생시키니 바로 경상도 상주에사는 김화공의 따님이었다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자 하였으나 한겨울이라 적설을 혜치고 나갈길이 없어 이듬해 봄까지 기다렸다가 그 처자의 집으로 데리고가서 전후사를 갖추어 말하고 스님은 되돌아 오려하였다 그러나 이미 김처녀는 대사의 불심에 감화를 받은바요 한없이 청정한 도덕과 온화하고 준수한 풍모에 연모의 정까지 골수에 밖혔는지라 그대로 떠나 보낼수없다 하여 부부의 예를 갖추어 달라고 애원 하지않는가 김화공 또한 호환에서 딸을 구해준 상원스님이 생명의 은인 이므로 그 음덕에 보답할길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며 자꾸만류 하는것이었다 여러날 밤을 의논한 끝에 처녀는 대사와 의남매의 인연을 맺어 함께 계룡산으로 돌아와 김화공의 정재로 청량사를 새로짓고 암자를 따로 마련하여 평생토록 남매의 정으로 지내며 불도에 힘쓰다가 함께 서방정토로 떠났다 두사람이 입적한뒤에 사리탑으로 세운것이 남매탑이며 상주에도 이와 똑같은 탑이 세워 졌다고한다
↓ 상원암
↓ 삼불봉은 천황봉이나 동학사에서 멀리 올려다 보면 마치 세 부처님의 모습을 닮아 삼불봉(775m)이라 부른다 삼불봉의 정상에서면 동학사와 더불어 동학사계곡,갑사계곡이 친근하게 내려다 보이며 관음봉,문필봉,연천봉과 쌀개봉,천황봉이 솟아올라 그 위용을 자랑한다 신록이 피어나는 동학사 계곡과 단풍이 붉게 타오르는 갑사 계곡이 천진보탑,수정봉 등과 드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탄하게한다 삼불봉의 사계조망은 언제나 아름다우나 특히 흰눈으로 장식한 계룡산의 풍광이 백미로서 이를 계룡산의 제2경으로 손꼽는다.
↓ 삼불봉에서 바라본 조망
↓ 되돌아본 삼불봉
↓ 자연성능에서 바라본 조망
↓ 자연성능 전망바위에서
↓ 올려다본 관음봉
↓ 관음봉에서
↓ 관음봉은 천황봉,쌀개봉으로 이어지는 계룡산 주봉의 하나로 해발 816m인 관음봉의 한운은 계룡산을 대표한 공주 10경의 하나 이기도하다 동학사 계곡과 신원사 계곡을 앞뒤로하고 쌀개봉과 관음봉,문필봉,연천봉 등이 지척에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특히 분홍빛으로 물드는 쌀개 능선과 3월의 신록속에서 줄지어 피어나는 서북 능선의 철쭉 꽃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구에게나 선물한다
↓ 관음봉 전망대에서
↓ 은선폭포는 옛날 신선들이 숨어서 놀았을만큼 아름다운 곳이라하여 이름 지어졌으며 폭포의 물줄기가 낙차되어 피어나는 운무는 계룡산 8경중 7경으로 지정 되어있다 이폭포는 홍색 장석질 화강암에 나타난 20cm 정도의 두께로 겹겹이쌓인 판상의 사절리들이 외부로부터 떨어져나가 만들어진 높이46m 폭10m의 폭포로서 지형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수량이 부족하여 낙수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폭포이다
↓ 쌀개봉은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V자형의 산봉우리가 쌀개봉이며 형상이 마치 디딜방아의 쌀개와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쌀개란 디딜방아를 양쪽으로 고정시키는 걸개를 말한다 쌀개봉의 한쪽면을 보면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있다 카메라 줌으로 당겨본 쌀개봉
↓ 삼성각은 언제건립 했는지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조선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칠성,산신,독성의 삼성을 봉안하고있는 사당 형태의 건물로 보편적으로 이 삼성을 따로 봉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동학사에서는 가운데 칠성탱을 중심으로 왼쪽에 산신도 오른쪽에 나반존자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충남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어있다
↓ 대웅전은 1980년 당시 주지였던 봉민 스님의 원력으로 개축된 건물로 무 사석으로 쌓은 석판위에 세워졌으며 내부에는 삼존불로 중앙에 석가여래상을 주불로 우측에 아미타여래상 좌측에 약사여래상을 봉안하고있다 후불 벽에는 근래에 제작된 삼불회상목각 탱이 봉안되었고 동벽에는 신장탱화와 약사회탱이 서벽에는 미타회탱과 현왕탱이 걸려있는데 목각탱을 제외한 불화들은 모두 1898년(광무2)에 제작되었다 전각 내외에 화려한 단청을 그려 장엄하며 외벽에는 팔상도가 그려져있다
동학사의 최초 창건은 남매탑 전설에 전해지는 신라시대 상원 조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입적한후 724년(신라33대성덕왕)그곳에 그의제자 회의화상이 쌍탑을 건립하고 청량사라 하였다 920년(태조3)도선이 중창한뒤 태조의 원당이 되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 유거달이 절에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를 지어 절 이름도 동학사로 바꾸었다 이 절의 동쪽에 학모양의 바위가 있어 동학사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 이학의 조종인 정몽주를 이절에 제향 하였으므로 동학사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충신들의 초혼제를 지내던 곳이며 1728년(영조4)신천영의 난으로 이절과 초혼각이 모두 불타 없어졌고 1785년(정조9) 정후겸이 위토(묘에서 지내는 제사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 하던논,밭)를 팔아 버리자 제사가 중단 되기도 하였다 1814년(순조14) 월인이 예조에 상소하여 10여칸의 사옥과 혼록봉 장각을 세웠다 1827년 홍회익이 인신을 봉안하는 집을 따로 지었으며 충청좌도 어사 유석이 300냥을 내고 정하영이 제답을 시주하여 다시 제사를 베풀었다 1864년(고종1) 봄에 금강산에 있던 만화보선이 이 절에와서 옛 건물을 모두헐고 건물40칸과 초혼각 2칸을 지었는데 초혼각은 1904년 숙모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뒤 만화에게서 불교경론을 배운 경허가 9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1871년(고종8) 동학사에서 강의를 열었고 1879년에는 이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한국의 선풍을 더날렸다 6,25때 옛 건물이 모두 불타없어 졌다가 1960년 이후 서서히 중건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삼성각,동림당,조사전,숙모전,육화당.염화실,강설전,화경헌,범종각,실상선원,동학강원 등이있다 이중 동학강원은 운문사의 강원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으로 손꼽히고있다 산내 암자로는 관음암,길상암,문수암,미타암,귀명암,상원암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는 삼성각과 삼층석탑이있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 미타암
↓ 길상암
↓ 동학사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