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산-용문산(1157m)
일시: 2015.05.31일 06:20분 덕천동 부민병원앞 출발 차량이동시간: 4시간10분 소요
이동거리: 16.2km 산행시간: 6시간40분(10:30분 출발-17:10분 하산)
코스: 선어치고개-소구니산-유명산(빽)-활공장-임도-임구치-배너미고개-제3등산로표지판-부대입구-전망바위-이정표삼거리-장군봉(빽)-이정표삼거리-용문산-치마바위-용문사-주차장
↓ 등산들머리 선어치고개
↓ 첫이정표
↓ 등산지도
↓ 등산트랙지도
↓ 등산기록
↓ 농다치고개와 선어치고개에서 올라와 만나는 지점
↓ 소구니산
↓ 유명산 340m전 삼거리 이정표
↓ 유명산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
↓ 유명산은 능선이 완만하고 부드러우며 계곡은 대부분 작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량이 풍부하다 산 정상에서 북쪽의 북한강과 청평호,남쪽의 남한강이 보이고 주변의 용문산과 화악산,명지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원래는 마유산 이었으나 근래에 유명산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이산 일대에서 말을 길렀다하여 마유산이라는 고유지명이 있었다 대동여지도에도 분명히 마유산으로 나오고있다 그런데 1973년"엠포르산악회"라는 산악단체가 국토 자오선 종주 등산을 하던중 이산을 보게되어 주변에 이산 이름을 물어 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은 이산 이름이 없다 생각하여 일행중 홍일점 이었던 젊은 여성의 이름(진유명)을따"유명산"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종주기가 당시 일간 스포츠에 기재되었고 그후에 유명산이란 이름이 굳어져버려 멀쩡히 갖고있던 원래의 이름대신에 유명산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 삼거리에서 올려다본 유명산 (오늘 가야할 등산로는 유명산 정상에서 되돌아 와야한다)
↓ 유명산 활공장
↓ 대부산으로 갈수있는 임도 삼거리 이정표
↓ 배너미고개
↓ 배너미 고개에서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 제3등산로 이정표
↓ 용문산 부대입구
↓ 정상에 군 부대가있어 사면길로 돌아가고있다
↓ 군부대와 KT송신소
↓ 되돌아본 유명산
↓ 내려다본 양평
↓ 올려다본 정상
↓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망
↓ 장군봉은 상원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있다
↓ 용문산 정상 100m전 이정표
↓ 용문산 정상에서
↓ 용문산은 양평을 대표하는 영봉으로 경기도에서 화악산,명지산 국망봉에 이어 네번째로 높으며 명산의 요소를 두루 구비한 산으로 신라때 용문사가 창건 되었다 본래의 이름은 미지산 이었으나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등극한 이후 용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용문산 정상은 많은 등산객이 찾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군사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금지 되었으나 2009년11월 개방하였다 노송 군락이 어우러진 암릉사이로 긴 협곡들이 발달되어 있으며 울창한 천년 수림으로 뒤덮혀 산세가 웅장하다 용문사,사나사,상원사,윤필암터 등 천년 고찰과 수령 1100년이 넘은 은행나무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용문산은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가지를친 한강기맥에 솟은 산으로 정상에서는 한강기맥 북쪽 북한강과 남쪽 남한강은 물론 인천 앞바다가 보일정도로 사방 100km거리가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로도 유명하며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때 몽고군 침입당시 이곳 주민들이 숨어 살았고 6,25때에도 격전을 치룬곳으로 지금까지도 정상에는 군부대가 상주하고있다
↓ 용문산 정상에서
↓ 마당바위
↓ 은행나무 밑둥
↓ 동양 최대의 용문사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이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42m 밑둘레가 14m나된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기록을 가지고있고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것이 특징이다 이 은행나무는 통일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이태자가 고려 왕건에 대항할 길이없어 군신회의를 열어 항복을 논의할때 신라천년 사직을 하루 아침에 버릴수 없다고 말하며 항복에 반대 하였으나 결국 고려에 항복 문서가 전달되자 마의태자는 개골산(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 대사가 짚고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것이 자라서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있다 정미의병 항쟁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으나 이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대는 순간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쳤다고하며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하는데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고종이 승하 하였을때는 가지 한개가 부러졌다고한다 조선 세종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년기념
물 30호로 지정 보호하고있다
↓ 용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용문산 자락에있다 신라 신덕왕 2년인 913년에 승려 대경이 창건한것으로 전해지며 다른설에 따르면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행차하여 직접 세웠다는 이야기도있다 고려 우왕4년(1378)에 "지천"이 개풍군 경천사에 있던 대장경을 이곳에 옮겨 봉안하였다 조선 세조29년(1447) 세종의 둘째 왕자인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현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다시 지었다 수양대군은 왕이된후 왕명으로 용문사를 중수하도록 하는등 관심을 보였다 이후 여러차례 중창 하였으나 대한제국 순종이 왕위에 오른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나면서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워 버렸다 1982년 선걸 스님이 취임하여 대웅전,삼성각,범종각,지장전,관음전,요사,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권근이 지은 "정지국사" 부도와 비는 보물로 지정되어있고 지방 유형문화재 172호인 "금동관음보살좌상"도 있다
↓ 용문사 대웅전
↓ 5층석탑
↓ 지장전
↓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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