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1108m)
일시: 2016.04.17일 07:30분 덕천동 종가집앞 출발 차량이동시간: 2시간 소요
이동거리: 14km 산행시간: 5시간40분(09:40분 출발-14:20분 하산)
코스: 대기마을주차장-거북바위-누룩덤-칠성바위-828봉-감암산(빽)-828봉-천황재-철쭉군락지-산불감시초소-베틀봉-안부임도-목책길-황매산(빽)-목책길-안부임도-철쭉군락지사면길-모산재갈림길이정표-안부덕만주차장갈림길-모산재(빽)-돛대바위(빽)-모산재-바위능선길-얼굴바위-순결바위-국사당-영암사-영암사지-황룡사입구-모산재주차장
↓ 대기마을 주차장
↓ 골목 정자각에서 우회전
↓ 산행들머리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등산기록
↓ 거북바위
↓ 암반오름
↓ 누룩덤
↓ 누룩덤에서 내려다본 조망
↓ 강아지 바위
↓ 누룩덤에서
↓ 누룩덤 이정표
↓ 뒤돌아본 누룩덤은 누룩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과 같다하여 누룩덤이라 한다
↓ 암반위에 7개의 암석이 북두칠성 모양으로 얺혀있다하여 칠성바위라 한다
↓ 828능선 이정표
↓ 감암산 정상
↓ 천황재
↓ 황매 철쭉 군락지
↓ 황매평전
↓ 황매산 정상이 안개에 가려져있다
↓ 안부 임도 이정표
↓ 황매산 올라가는 목책길
↓ 황매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조망
↓ 황매산 정상
↓ 황매산 정상 이정표
↓ 모산재 갈림길 이정표
↓ 능선에서 올려다본 황매산과 중봉,하봉,삼봉
↓ 황매산 오토 캠핑장
↓ 덕만 주차장 갈림길 이정표
↓ 모산재는 합천 팔경가운데 제 8경에 속한다 주민들은 잣골듬 이라고도 부르며 신령스런 바위산 이란뜻의 영암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위산에 산이나 봉이아닌 높은산의 고개라는 뜻의 재라는 글자가 붙은것이 특이한데 모산재의 옆과뒤에 여러개의 고개가있고 재와재를 잇는 길가운데에 산이 위치한탓에 산보다는 재로 인식된 것이라는 설도있다
↓ 모산재에서
↓ 돛대바위 능선에서
↓ 돛대바위에서 바라본 모산재 바위능선
↓ 측면에서 본 돛대바위로 돛대바위는 황매산 자락의 하나로 억샌사내의 힘줄같은 암봉으로 이뤄진 산이다 풍수 학자들은 시야와 생기의 흐름이 동쪽 방향으로 행하고 동쪽에 기가 솟구치는 형상의 자연석이 소재한 이곳이 전국 최고의 생기의 장이라고 하였다 이 돛대바위는 오랜 세월에도 변치않은 웅장함으로 황매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있다
↓ 정면에서 본 돛대바위
↓ 돛대바위 능선에서
↓ 모산재에서 셀프촬영
↓ 모산재에서 바라본 돛대바위와 철계단
↓ 모산재 능선에서
↓ 얼굴바위
↓ 모산재 능선에서 내려다본 대기마을과 저수지
↓ 모산재 능선에서 둔내리 방향
↓ 모산재 능선에서
↓ 순결바위는 남,여의 순결을 시험할수 있다는 곳으로 이 바위는 평소 사생활이 순결치 못한 사람은 들어 갈수가 없으며 만약 들어간다 해도 바위가 오므라들어 나올수 없다는 전설이있다
↓ 영암사 극락보전
↓ 영암사 불상
↓ 영암사지는 신라시대의 절터로 그 정확한 창건 연대가 알려져 있지않으나 고려때인 1014년(현종5)에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83세로 입적 하였다는 기록이있어 그 이전에 세워졌던 것으로 여겨지고있다 1984년 절터 일부의 발굴 조사를 통해 불상을 모셨던 금당과 서금당 회랑과 부속된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다 절터에는 통일 신라시대에 만든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과 서금당지 좌,우로 합천 영암사지 귀부 2기가 남아있다 통일 신라시대 말부터 고려 시대까지 걸쳐 기둥초석 각종 기와와 함께 8세기경의 금동여래 입상이 출토되어 이절의 창건 연대를 짐작할수 있다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사찰 건물과 다른 몇가지 특징이있다 금당이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돌 출부 좌우에 무지개 모양의 계단이 있는점,금당기단 면석에 얼굴 모양이 조각되었고 뒷면을 제외한 3면에 신비스런 동물 모양을 돋을 새김한점,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특징과 아울러 절터내에 흩어져있는 석조물은 이색적인 느낌마져준다
↓ 영암사지 회랑지 건물이 있던 터이며 이곳 영암사지에 세워진 삼층 석탑은 가운데 몸돌이 무너져 있던것을 1969년에 복원하였다 1차 금당지 앞에 2단의 기단위에 세워진 3층 석탑으로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 양식을 따르고있다 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줄로 되어있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이 약간 높은편이며 2,3층은 크게줄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씩이고 처마밑이 수평이며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탑의 머리장식 부분은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지붕돌의 윗면에 구슬과 화려한 장식을꽃는 쇠막대를 끼우던 구멍이있다 위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높은 느낌은 있으나 전체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각 부재의 짜임새 또한 간결하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잘 이어받고 있으나 기둥 표현이 섬약하고 지붕돌 받침수가 줄어든 점으로 보아 건립 시기는 9세기 경으로 짐작된다
↓ 영암사지 터에 세워진 또하나의 통일 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가져 가려는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 하였다가 1959년 원래의 자리에 옮겨 놓았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 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 신라시대의 기본 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있다 아래 받침돌에는 연꽃이 조각 되었고 그위로 사자 두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있다 사자의 뒷발은 아래 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뒷 받침돌을 받들었다 머리는 위로 항하고 갈퀴와 꼬리,근육등이 사실적이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있고 다른 사면에는 사천왕 상이조각 되어있다 지붕돌은 8각으로 얄고 평평하며 여덟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과 견줄수있는 걸작 이라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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