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630m)
일시: 2018.06.07일 07:00분 덕천동 부민병원 출발 차량이동시간: 4시간20분 소요
이동거리: 7.5km 산행시간: 3시간30분(11:20분 출발-14:50분 하산)
코스: 관천향교-약수터-연주암갈림길-연주암-연주대-자운암능선-자운암국기대-자운암이정표-자운암-서울공대-서울대정문
↓ 과천향교 입구(도로는 일방 통행로이다)
↓ 연주대 방향 골목 안으로 들어간다
↓ 등산지도
↓ 등산기록
↓ 과천향교앞 다리건너 연주암 방향으로 진행한다
↓ 과천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교육 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양민(良民) 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수 있었고 시(詩)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詞章學)과 유교의 경전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교육 내용이었다 또한 향교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선현에게 제사를 하였다 이향교는 조선 태조7년(1398) 관악산 기슭에 세워졌으나 자주 불이나고 과거에 오르는 학생도없는 등의 일이 생기자 터가 좋지 않타고 여겨 숙종16년(1690)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944년 시흥향교,과천향교,안산향교를 통합하여 시흥 향교로 하였다가 1996년에 과천향교로 복원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숙종16년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세워졌다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에 들어서면 동,서재와 동,서무가없고 명륜당,내삼문,대성전이 대부분 향교와 마찬가지 양식으로 배치 되어있다 1975년에 완전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 과천 향교앞 이정표
↓ 골목 끝지점에서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 두번째 이정표
↓ 자하동천 계곡으로 계속 올라간다 (계곡은 말라있음)
↓ 약수터
↓ 연주암 갈림길 이정표 (연주암은 연주암 방향으로 가도되고 연주샘 방향으로 올라가도 된다)
↓ 산장에서
↓ 연주암
↓ 대웅전
↓ 종각
↓ 연주암 삼층 석탑은 높이3.6m로 1장의 판석으로 구성된 지내석위에 기단은 단층에 4장의 판석을 엇물려서 조성 하였는데 각면에는 모서리 기둥(우주.隅柱)이 새겨져있다 탑신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있다 지붕돌 받침의 1층은 4단이지만 2층과3층은 3단으로 만들어져 규율성을 잃고있다 낙수면의 길이가짧고 전각의 반전이 둔중하여 고려시대 석탑의 특성을 보여주고있다 지붕돌 위에는 노반석(露盤石)과 앙화(仰花) 보주가 놓여있다 이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으로 각 부분의 비례가 잘맞고 제작 수법도 정연하여 고려중기 이전에 제작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연주암 영산전
↓ 천수관음전
↓ 연주암 경내
↓ 효령대군(1396-1486)은 태종과 원경황후 민씨의 둘째 아들로 세종의 형이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하여 늘 태종을 따라 사냥터에 다녔다고한다 가로74㎝ 세로90㎝의 효령대군 영정은 정면을 바라보며 왕이 평상시에 쓰는관처럼 익선관(翼善冠)형태의 황색 관모를쓰고 깃과 소매에 녹색의 선을댄 홍포(紅袍)를 입고서 용과 봉황으로 장식된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의자와 발을 올려놓는 족좌대는 흔히 보기 어려운 독특한 형태로 비록 여러번 옮겨그려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기 어려우나 원본의 형태를 전하고있다 얼굴은 정면을보는 관계로 각 세부가 도식적이고 미숙하게 처리되었다 하지만 오른손으로 물건을 잡고있는 자세는 조선전기 초상화에서 보기드문 것으로 이 그림이 갖는 특이한 표현이다 이 작품은 비록 여러번 묘사된 그림 이지만 조선전기 초상화를 연구 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
↓ 연주암뒤 전망대에서
↓ 연주대 이정표
↓ 연주대 밑 전망대에서
↓ 전망대에서 바라본 연주대
↓ 정상 올라가는길
↓ 관악산 정상에서
↓ 연주대는 관악산의 기암 절벽위에 석축을쌓아 터를 마련하고 지은 암자로서 원래 신라의 승려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17년(677)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관악사를 건립할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의상대라 불렀다고한다 관악사와 의상대는 연주암과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내력에 대해서 두가지 이야기가있다 하나는 조선 개국후 고려에대한 연민을 간직한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개성을 바라보며 고려의충신 열사와 망해버린 왕조를 연모했다고 하여 연주대라 불렀다는 이야기이고 또하나는 조선 태종의 첫번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두번째 왕자인 효령대군이 왕위 계승에서 멀어진뒤 방랑하다가 이곳에올라 왕위에 대한 미련과 동경의 심정을 담아 왕궁을 바라 보았다하여 연주대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다 두이야기 모두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의 주변 경관이 워낙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수있는 위치에서 붙여진 전설로 생각된다 현재의 건물은 세평 남짓한 맞배 지붕으로 조선후기에 지어진것을 최근에 해체 복원한 것이다
↓ 관악사지 통로
↓ 관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KBS송신소와 기상레이더
↓ 정상에서
↓사당능선 6거리 안부에 등산객들이 모여있다
↓ 정상에서 서울대 방향
↓ 자운암 능선으로 내려와 뒤돌아본 KBS송신소
↓ 내려가는 방향으로 자운암 국기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 자운암 국기대(이곳에서도 암벽타기를 하는곳이다)
↓ 국기대에서
↓ 자운암 능선에서
↓ 자운암 방향으로 내려간다
↓ 내려다본 서울대
↓ 자운암으로 내려온다
↓ 자운암
↓ 자운암(慈云庵)은 1396년(태조5년) 무학대사가 창건 하였다고 한다 창건당시 사명을 자운암(紫雲庵)이라 하였으나 1734년(영조10년) 대효선사가 중수하면서 자운암(慈雲庵)으로 개명하였고 1777년(정조원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조선 9대왕인 성종이 어머니 소혜왕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봉안한 위패가 아직까지 전해오고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사찰이 위치한곳은 자하동천 이라 불리던 계곡으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쌓여있고 나무가 울창하게 선경을 이뤄 예로부터 자하시경(紫霞詩境)이라 불려왔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시,서,화에 모두능하여 삼절로 불리며 관악산 자하동의 낙엽과 붉은 노을을 지극히 사랑하여 자하라는 호를 사용한 신위(申緯)가 어렸을적 이곳에서 학문을 닦았다고한다 대웅전 뒤편에 자리한 마애미륵 부처의 조성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명당요처에 자리하고있어 역사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기도의 영험함이 알려지면서 신도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가 끊이지않는 관악산내 기도성취 도량이다
↓ 서울대 앞에서 관악산으로 올라가는 입구
↓ 서울대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