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봉(424m)
일시: 2018.07.15일 07:20분 덕천동 부민병원 출발
이동거리: 8km 산행시간: 4시간(11:30분 출발-15:30분 하산)
코스: 내변산주차장-실상사-봉래곡-월명암갈림길-직소보-선녀탕-분옥담-직소폭포-재백이고개-307봉-관음봉삼거리-관음봉(빽)-전망바위-관음봉삼거리-벌통봉-재백이고개탐방로입구-내소사(빽)-일주문-내소사분소주차장
↓ 내변산 주차장
↓ 등산로 입구
↓ 시원한 숲길이다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등산기록
↓ 대나무길
↓ 실상사는 신라 문무왕9년(689)에 초의 스님이 창건하고 조선시대 효령대군이 고쳐 지은것이다 실상사는 내변산에있는 4대 사찰중의 하나로 고려 시대에 제작한 불상과 대장경 등 소중한 유물을 간직한 유서깊은 사찰이며 대웅전과 나한전,산신각 등이있으나 1950년의 화재로 모두 불타고 터만 남았다 절터에는 3개의 부도가 남아있으며 그중 2기는 종모양의 부도로 상태가 비교적 좋은편이다
↓ 봉래곡 계곡
↓ 남여치와 월명암을 거쳐 올라와 여기서 만나는 길이다
↓ 직소보
↓ 직소보는 1991년 부안댐이 건설되기 전에 부안 군민의 비상 식수원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보"이다 직소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분옥담,선녀탕을 지나 이곳 직소보에 모이며 전망대의 모양은 미선나무 열매 모양을 형상화하여 부드러운 곡선의 미를 살렸다
↓ 선녀탕이다
↓ 멀리서본 직소폭포
↓ 직소폭포 아래에있는 분옥담
↓ 올려다본 분옥담 전망대
↓ 부안지역 내변산의 직소폭포는 높이약30m 정도로 폭포를 받히고있는 둥근못으로 곧바로 물줄기가 떨어진다고 하여 직소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직소폭포 주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응회암에서 관찰할수있는 용결 조직과 주상절리를 관찰 할수있으며 유수의 침식 작용에의한 폭포의 형성 원리를 이해 할수있다 일반적으로 폭포가 형성될수있는 지질학적 요인은 상부의 암석층 강도가 강하고 하부층의 강도가 비교적 약할경우 유수에의한 침식 소도의 차이에의해 절벽면이 형성되고 이 절벽면을 따라 물이 흘러 내리면서 폭포를 이루게된다 육중한 암벽단애 사이로 쉴새없이 쏟아지는 물이 그 깊이를 혜아리기 어려울만큼 깊고 둥근 소를이룬다 이소를 실상용추라고 하며 이물은 다시 제2,제3의 폭포를 이루며 분옥담,선녀탕 등의 경관을 이루는데 이를 봉래구곡 이라한다 이곳에서 흐르는 물은 다시 백천계류로 이어져 뛰어난 산수미를 자랑하고 있다
↓ 평탄한 게곡길
↓ 재백이고개 이정표
↓ 307봉에서 바라본 조망
↓ 관음봉 삼거리
↓ 관음봉으로 가는길 암벽밑에 낙석 방지용으로 이렇게 해놓았다
↓ 관음봉
↓ 관음봉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
↓ 관음봉 정상 이정표
↓ 관음봉 200여미터 아래에있는 전망대에서
↓ 하산길 바위 전망대에서
↓ 능선을 다내려와 만나는 재백이고개 탐방로 출입문
↓ 내소사로 들어가는 이길은 "한국의아름다운길100선"에 선정된 길이다
↓ 내소사 천왕문
↓ 능가산 관음봉 기슭에 위치한 내소사(來蘇寺)는 백제무왕34년(633)에 혜구두타 스님이 이곳에 절을세워 소래사라 하였는데 창건당시에는 대소래사 소소래사가 있었으나 대소래사는 소실되었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가 남아 있는것이다 현존 사찰은 조선조 인조11년(1633)에 청민선사에 의하여 중건 되었으며 고종2년(1865)에 관해선사에 의하여 중수되어 그후 만허선사가 보수하였다 당초의 소래사를 내소사로 부르게된 연유는 알수없으나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내소사로 불러온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찰에는 보물제291호 대웅보전 보물제277호 고려 동종이있고 보물제278호 법화경절본사 본은 전주 시립박물관에 위탁 보관되어있다 부속 암자로는 청년암과 지장암이있다
↓ 범종각
↓ 수령 1000년이된 느티나무는 수고20m 나무둘레 7.5m이다
↓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든것이나 신라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높이는 3.46m이다 맨아래의 받침대는 하나의돌을 이용한 것으로 몸체도 층마다 하나의 돌을 사용 하였으며 각면마다 기둥을 새겼다 몸체와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와 높이가 급격하게 줄었으며 지붕돌의 경사도 심한편으로 날렵한 느낌을주는 탑이다
↓ 내소사 대웅보전은 쇠못하나 쓰지않고 모두 나무로만 깎아끼워 맞추었고 조선중기의 대표적 건물양식을 띄고있으며 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세월의 흐름에따라 단청은 모두 퇴색되어 나무결을 그대로 드러 냈음에도 그 특유의 고풍 스러움과 화려함은 세월이흐른 지금도 여전히 느낄수있다 꽃살문은 해바라기,연꽃,국화등의 꽃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데 그 새긴모양이 문마다 다르고 섬세함을 엿볼수있다 대웅보전 현판은 조선후기의 학자이자 서예가로 본관은 전주,호는원교 또는 수북인 이광사가 쓴 글씨이다
↓ 대웅전 삼존불
↓ 지장전
↓ 삼성각
↓ 요사채
↓ 고려 동종은 원래 내변산에있는 청림사에서 고려고종9년(1222)에 만든것으로 조선 철종원년(1850)에 이곳으로 옮겼다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종으로 높이는 1.03m 직경은67㎝ 무게는 420kg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에는 용을새겼고 종가운데에 세분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가운데 본존불은 연꽃위에 앉아있고 좌우 협시상은 서있는 모습이다 종의 윗부분과 아랫 부분에는 화려한 식물문양을 새겼으며 해바라기 처럼 뾰족한 끝을가진 연꽃 무늬가 종을 때리는 자리(당좌)이다 표면의 묘사수법이 정교하고 사실적인 이종은 통일 신라시대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고려시대 범종의 특징이 잘 드러나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