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혼불문학관(남원)

은 척 2019. 4. 17. 12:23

↓ 혼불 문학관 안내도

   혼불은 최명희님이 1980년4월부터 1996년12월까지 17년동안 혼신을바친 대하소설로 20세기말 한국 문학의 새지평을 연 기념비적 작품이다 혼불은 일제 강점기때 사매면 매안마을의 양반가를 지키려는 3대의 며느리들과 거멍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숨결과 손길 염원과 애증을 우리말의 아름다운 가락으로 생생하게 복원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혼불 문학관은 근원에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고자 혼을 불사른 최명희님의 뜻을 영원히 기리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아우름의 터전이다 혼불의 문학정신은 혼불 문학관과 혼불의 배경지 노봉 마을에서 맑은샘을 이뤄 넓디넓은 대양으로 힘차게 뻗어 나갈것이다

↓ 혼불 문학관 정원분수

↓ 주차장에서 혼불 문학관으로 오르는 계단


↓ 혼불 문학관의 모습


↓ 관리동과 사무소

↓ 시비




↓ 새암바위 안내문

↓ 새암바위

↓ 관리동의 모습



↓ 관리동 옆벽에 소원을 비는 마음을 달아놓은 모습

↓ 겨울에 땔감으로 쌓아놓은 장작이 너무나 깔끔하다


↓ 정원 분수대

↓ 관리동의 모습

↓ 혼불 문학관 입구

↓ 혼불 문학관 내부의 모습이다


↓ 최명희(1947-1998)는 1972년 전북대학교 국어 국문과를 졸업하고 1972-1981년 전주 기전 여자고등학교와 서울 보성 여자고등학교 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쓰러지는별"이 당선되어 등단한 최명희는 이듬해 동아알보 창간 60주년기념 장편소설 공모전 당선작인 "혼불" 제1부로 문단 안팎의 주목을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후 1985-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혼불"제2~5부를 연재했으며 1996년12월 제1~5부를 전10권으로 묶어 완간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초 전라북도 남원을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종가의 종부3대가 겪는 삶의역정을 그려낸 혼불은 역사적 사건의 추이를 더듬는 여느대하 소설들과는 달리 한국인의 세시풍속,무속신앙,관혼상제,관제,직제,신분제도,의상,가구,침선,음식,풍수등 당대의 습속과 풍물가치를 눈에 잡힐듯 환하고 꼼꼼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대해 방대한 고증과 치밀하고 섬세한 언어구성 생기넘치는 인물 묘사로 우리민족 혼의 원형을 빚어냈다고 극찬하였다 최명희가 무려 17년동안 오롯이 이 한작품에 기울인공은 각별했다 혼불의 주요 무대가된 중국 동북지방과 선양,무단강 유역을 돌아다니며 조선족을 만나 취재한 1994년 64일간의 장정은 그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암에걸려 몇차례 혼절을 거듭 하면서도 원고지 12000매 분량에 이르는 이작품의 집필과 수정 보완 작업을 매듭 지었으며 작품완간 1개월뒤 기어코 쓰러져 입원 해야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가정신은 3차례의 수술과 2년여 투병생활 중에도 6~7부의 집필 계획에 골몰할만큼 강인한 것이었다 최명희는 1994년초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동양학 연구소 초청강연을 시작으로 시카고대학교 한국을 사랑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모임과 뉴욕 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한국학회의 초청강연 등 한국문화의 이해를 돕기위한  해외강연에 나섰다 특히 스토니브룩 한국 학회에서 행한 강연문인 나의혼,나의문학은 현지에서 한국학과 고급 한국어 교재로 채택 되기도 하였다 1997년 전북 대학교에서 문학 명예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단재상1997년 세종문화상 1997년 전북 애향대상 1997년 여성동아 대상1998 및 호암상 예술 부문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혼불외에 몌별,만종,정옥이,주소,제망매가 등의 단편들이있다 최명희는 1998년12월11일 난소암으로 별세했다


↓ 혼불의 줄거리이다




↓ 혼례치르는 모습


↓ 강모 강실이 손꿉놀이 하는장면이다

↓ 춘복이에 대하여

↓ 혼불 가계도

↓ 계단 통로에 달아놓은 소원성취 표찰


↓ 정원




↓ 청호 저수지는 비산비아 사질토로 물이 부족하여 농사짓기가 어려워만든 저수지이다 마을 서북쪽으로 뻗어내린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맥을 가두기위해 큰못을파고 그갇힌 기운이 찰랑찰랑 넘치게 한다면 백대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릴만한 곳이다 하여 청암부인이 실농한셈 치고 2년여에 걸쳐 만들었다 저수지를 파다가 동서로 열다섯자 네치 남북으로 열넉자 두치에 이르는 실로 거창한 바윗돌이 보면볼수록 엎어놓은 조갑치 형상인 조개바위가 나왔다 사람들은 이바위가 이씨문중과 종가는 물론 이거니와 온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될것으로 굳게믿었다 이저수지는 최명희 집안에의해 100년전에 만들어져 1987년 보수작업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있다

↓ 청호 저수지에서 내려다본 혼불의 배경이된 노봉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