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산(528m)
일시: 2013.09.08일 08:25분 덕천동 부민병원앞 출발 차량이동시간:1시간50분
도상거리: 7.4km 산행시간: 4시간30분(10:20분 출발-14:50분 하산)
코스: 주차장-바위쉼터-연화1봉-느재고개-적멸보궁이정표-연화산-운암고개-남산-황새고개-청련암-옥천사-연화저수지-주차장
↓ 주차장
↓ 공룡 발자국을 보며 바로 옆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 오늘 돌아온 등산 트랙지도
↓ 연화1봉 정상
↓ 느재고개
↓ 연화산 가기전 전망대에서 본 풍경 바로앞 연화1봉이 보인다
↓ 연화산 정상
↓ 남산 돌탑위 팻말에"당신의 할머니도 이길을 다녔느니라"란 문구가 있다
↓ 황새고개에서 왼쪽계곡으로 하산길이다
↓ 청련암 밥솥
↓ 청련암
↓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오래된 은행나무 그리고 청련암 입구에는 250년된 찰피나무가 관리 소홀로 죽어 기둥만 남아있다
↓ 청련암 경내
↓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당나라 지엄법사 에게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화엄을 강론하기 위해 670년에 창건한 절이다 절의 이름은 대웅전 좌측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달고 맛있는"샘"옥천이 있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지금은 하동 쌍계사의 말사 이지만 당시에는 화엄종찰로 지정된 화엄10대 사찰중의 하나였다 통일 신라시대의 진경국사와 고려 시대의 진각국사가 이 절에서 수행하였고 임진 왜란때는 구국 승병의 군영역할을 수행 함으로서 호국 사찰의 기능도 수행 하였다 일본군에 의해 소실된 옥천사는 이전에 비해 큰 규모로 중창되어 단순한 종교적 기능이 아닌 호국사찰의 기능까지 수행하면서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1733년(영조9년)부터 1842년(헌종8년)까지 이절에는 340여명의 군정이 기거했으며 12건물과 12물레방아가 있었다는 기록이있다 광복이후 교단 정화와 불법 중흥을위해 헌신한 청담 대종사가 1927년에 첫 승려 생활을 한 곳이며 매년 음력9월27일에는 이곳에서 이 절을 개창한 의상대사와 청담 대종사의 열반제가 거행되고 보물 제495인"임자명반자"와 경남 유형 문화재인 대웅전,자방루,향로,범종과 백련암,청련암이 있다
↓ 연화산 옥천수라고 하지만 실제로 옥천수는 대웅전 뒤에있다
↓ 범종각
↓ 대웅전 뒤뜰
↓ 옥천사의 보장각에는 천여점이넘는 문화 유물을 보관하고있다
↓ 물이 달고 맛있다는 옥천샘
↓ 경내 뒤뜰
↓ 조사전
↓ 나한전
↓ 대웅전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임진 왜란때 소실된것을 1657년(효종8년)에 용성화상이 중창 하였으며 그후 여러차례 중수하였다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의 다포계 양식 건물이다 건물의 규모는 일반 대웅전과 비슷하나 마주보고있는 자방루나 적묵당의 크기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다만 높이쌓은 석축위에 건물을 조성 함으로서 이곳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든 위를 올려보게하여 중심건물이 갖는 당당한 권위를 나타내고있다 앞 마당에는 당간지주가 있다
↓ 대웅전 불상
↓ 자방루는 1764년(영조40년)뇌원 대사가 초창하고 1888년(고종25년)에 중수한 누각으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건물이다 240여년된 건물로 경남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 되어있다 대들보 6개중 왼쪽에서 4번째에는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비천상이 쌍방으로 그려져있고 3번째에는 비룡이 그려져있다 4개의 기둥중 2번3번의 기둥 머리에는 용두가 쌍방으로 조각 되어있다 지붕밑의 장혀와 창방에는 화조도와 풍경화를 번갈아 그렸는데 이는 120년전 중수당시에 그린 단청그림이다 각종 기묘한 새 그림이 안팎으로 다수 그려져있어 조선말기의 단청장 스님들의 솜씨를 엿볼수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밑의 큰 벽화는 근래에그린 풍경화로 솜씨에 차이가있다 사찰의 누각은 대개 2층누각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으로 올라가게 되어있으나 자방루의 경우 초창당시 300여명의 승군에게 군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단층누각을 건립한것이다 이후 이 누각은 승려들에게 불경을 가르치고 초파일같은 큰 행사때 법회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자방루란"꽃다운 향기가 점점 불어난다"는 말로"불도를 닦는 누각"아라는 뜻이다 또한 이 자방루는 절 외곽을 둘러쌓아 중심 영역인 대웅전을 가리고있다 기둥과 기둥사이를 모두 두터운 문으로막고 오직 앞마당과 면하는 전면만을 개방하여 큰성채를 방불케한다 이렇게지은 이면에는 당시 임진 왜란직후 조정에서는 전략 요충지에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적 목적의 사찰을 건립한 예가있다 경남의 대표적 호국 사찰이었던 옥천사의 이 건물도 이러한 목적에서 지어 졌을것으로 보며 군사용 회합장소로 대 공간이 필요했을 터이므로 산지에 자리잡은 절에서는 예를찾기 힘들정도로 큰 자방루이다
↓ 자방루 내부
↓ 부도탑
↓ 연화 저수지
↓ 등산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