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제산((480m)
일시: 2013.09.15일 08:00분 덕천동 부민병원앞 출발 차량이동시간: 2시간
도상거리: 13.8km 산행시간: 5시간15분(10:15분 출발-15:30분 하산)
코스: 오어사주차장-자장암-운제선원-입산신고소-깔딱재-전망대이정표-대왕암-운제산-이정표(연일,대각,시루봉)-이정표(홍계)-갈림길(임도와만나는지점)-시루봉-산여고개-내나무-오천정씨표지석-422봉(헬기장)-갈림길-원효암-오어사-주차장
↓ 자장암은 자장율사께서 이곳에 최초로 산문을열고 법률을 굴리는 부처님의 정법의 깃발을 세우자 사방에서 광망이일고 상서로움을 빚어내는것을 보고 하늘이 숨겨놓은 길상지임을 깨닫고 가람을 지어 자장암이라 이름하였다 자장암은 영남제일의 기도성지로서 우리조상들은 이곳에서 무생의 지혜를 닦아 일승의 원지를 깨달아 안심입명을 얻어 원과 뜻을세운 사람들은 부처님 가피를 입어 빈손으로 왔다가 실리를얻어 돌아갔으니 이곳이 천하의 복지요 영지이다 오랜세월을 견딘요사는 기왓장이 부서지고 섯가래가 내려앉아 무너지게 되었다 무너진 요사채는 복원불사와 500불 불상조성 봉안 불사의 원을세워 경상북도와 포항시가 지원하여 복원하였다.
↓ 오늘 돌아온 트랙지도
↓ 등산기록
↓ 입산신고소인데 여기서 1시 방향으로 진행한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천읍과 포항시내
↓ 운제산 정상밑 갈림길
↓ 운제산 정상으로 해돋는 영일만의 장쾌한 기상과 손에 잡힐듯한 깊고 그윽한능선을 한눈에 관망할수있다 운제산의 유래는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에서 함께 수도를 하면서 구름을 사다리 삼아 절벽을 넘나들어 운제산이라고 했다는 설과 신라2대왕인 남해왕의 비 운제부인의 성모단이있어 이름이 유래 되었다는 설이있다 가뭄이 심할때 산 정상에있는 대왕암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하다는 설도있다
↓ 운제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 대왕암은 옛날 왜국에 힘센역사 한사람이 있었다 이 역사는 일본 전국을 두루다니면서 힘겨루기를 하여 일본의 모든장수를 굴복시킨후 한반도로 건너왔다 전국을 다니면서 강한자가 있다는 소문만들어면 달려가 힘을 겨루어 모두 물리쳤다 어느날 운제산 대각봉에 다다르니 동해가 활짝열리고 수평선 넘어에 고국 일본이 보일것만 같아 부모형제 생각에 젖어있는데 등뒤에서 인기척이나 뒤 돌아보니 한 역사가 서있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는 창해 역사라고했다 창해는 동해의 옛이름으로 창해 역사는 뇌성 벽력같은 소리로"네가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역사인가?"너를찾아 수십일을 혜메다가 오늘 여기서 만나게됐구나 하면서 두 역사가 겨룬경기는 바위 멀리던지기로 먼저 창해 역사가 동해 바다쪽으을 향해 힘껏던져 날아간 바위는 독산(장기면금곡리소재)산마루에 일본 역사가 던진 바위는 갓바위(장기면영암리소재)거리 차이가 없어비긴 것으로하였다 그후 두역사는 만날때마다 치고박고 싸우다가 일본 역사가 넘어지면서 손을짚었는데 그곳이 그만 움푹꺼지니 이곳으로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호수가 되어 지금의 영일만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 역사는 창해 역사앞에 무릎을 꿇고 군신의 예를 취해 창해 역사는 임금이되고 일본 역사는 신하가 되었다고한다
↓ 연일 주차장,시루봉 이정표가 있는곳으로 주의 지점읻이며 시루봉 방향으로 가야한다
↓ 임도와 만나는 갈림길로 임도쪽으로가면 경주 방향으로 간다
↓ 시루봉 정상
↓ 능선에서 바라본 운제산과 산불 감시초소
↓ 원효암 삼성각으로 원효대사는 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속성은 설씨,법명은 원효,법호는 화쟁,초명은 서당이다 신라 진평왕 39년 압랑군 불지촌(현재의경산시)에서 태어났으며 설총의 아버지이다 젊은시절 의상과함께 당나라에가서 수학 하고자 요동까지 갔지만 고구려 군에게 첩자로몰려 같혀있다가 겨우 풀려나 신라로 되돌아왔다 십년후 두번째로 의상과함께 당나라로 가기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던도중 하룻밤을 지내게된 토굴에서 갈증이나 토굴속에 고여있는 물을마셨는데 물맛이 매우달고 시원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보니 토굴이아니고 오래된 공동묘지였고 물을마셨던 그릇은 바로 해골이였다 이를 계기로 대오한후 원효대사는 미친 사람이나 거지 행세를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민중 포교에 들어갔다 이후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았고 그후 파계하였다 파계한후 속복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하면서 천촌민락을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난한사람,어린 아이들까지도 모두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염불을 할수있게되었다 원효 대사가 교화한 사상으로는 인간의 원래본성인 일심으로 돌아가자는 일심사상 모두가 실제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하나로 만난다는 화쟁사상,모든것에대한 집착을 버리는 무애사상이 대표적이다 말년에는 왕궁에서"금강삼매경"을 강의 하였고"십문화쟁론"을 찬슬하였으며 분황사에서"화엄경"사십회향품소"를 지었다 원효대사는 신라 신문왕6년 70세의 나이로 혈사에서 입적하였다 입적후 아들 설총이 원효대사의 유해로 소상을 조성하여 분황사에 봉안하였다 원효대사의 대표적 이야기로는 무덤속 대오설화(해골물설화)척반구중설화,화엄신장옹호설화 등이있다
↓ 관음전으로 운제산 오어사는 원효대사와 혜공스님의 이적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명찰이며 특히 산내의 원효암은 우리나라 1700년 불교사에있어 가장 위대한 성사로서 국민개도와 정신문화 창달에 지대한 공을끼친 원효스님께서 좋은 터를잡아 암자를 창건하고 수도하던 성소이다 원효대사는 신라 국민에게는 자모와같은 성자였으니 쉬운 교화방법으로 민중을 개도하고 화엄경의 일체 무전인이일도출생사라는 사상에 의거하여 간촌민락으로 다니면서 신라를 불국정토로 장엄하였다 이렇게 원효암은 무애성사에서 주석하며 당데의 고승인 혜공,대안대사등과 법력을 겨루던 성지로서 수려한 공덕이 상주하는 도량이다 개침이후 여러차례의 중창을 거쳐 요사채는 1954년에 선적선화가,삼성각은 1984년에 법림스님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오어사 회주인 처봉종원화상이 원효암 신도와함께 성지 중창의 큰 원력을세워 1996년3월8일에 불사를 시작하여 1999년3월7일에 낙성하게 되었다
↓ 원효암 관음전
↓ 하산길에 바라본 자장암
↓ 오어사 경내
↓ 삼성각 앞에 백일홍(베롱나무)이 활짝피었다
↓ 오어사 대웅전으로 이 건물은 신라 진평왕때 처음 건립한것으로 전한다 오어사는 원래"항사사"라 불리었다고한다 신라의 고승 원효와 혜공이 수도를 하다가 법력으로 개천의 죽은 물고기를 생환토록하는 시합을 하였는데 두마리중 한마리가 살아 힘차게 헤엄을치자 이때 살아움직이는 고기가 서로 자신이 살린 고기라하여 이때부터"나"(吾)고기"어(魚)를써서 오어사로 불렀다고한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영조17년(1741)에 중건된것으로 정면3칸 측면2칸의 다포 형식의 팔작집이다
↓ 우리가족 모두를위해 기와장을 헌불하였다
↓ 경내에 빨간 백일홍(베롱나무)이 만발하였다
↓ 오어사앞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 오어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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