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화왕산(창녕)

은 척 2015. 10. 20. 09:33

화왕산(756m)

일시: 2015.10.18일             08:30분 모라동 모라역출발             차량이동시간: 1시간40분 소요

이동거리: 11.1km              산행시간: 6시간(10:20분 출발-16:20분 하산)

코스: 옥천매표소-관룡사-청룡암-능선이정표-동굴-구룡산(빽)-동굴-능선이정표-암봉-관룡산-정간재-허준셋트장-동문-화왕산-서문-배바위-이정표-팔각정-자하곡매표소(주차장)

↓ 옥천주차장

장승은 일반적으로 돌로만든 석장승과 나무로만든 목장승으로 나뉜다 고대 성기 숭배에서 나왔다는 설과 사찰 토지의 표지로 이용했다는 설 등 기원설이 다양하다 조선 시대에는 지방에 따라 벅수,벅시,법수,수살목,당산할배 등으로 불렀다 장승의 소속과 위치에 따라 마을을 지키는 마을장승 사찰의 입구나 사방 경계에 세워진 사찰장승 지역간의 경계,성문,병영,해창,관로 등에서있는 공공장승 등이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관룡사 장승은 절입구에 한쌍이 서있다 왼쪽에 서있는것이 남 장승이고 오른쪽에 서있는것이 여 장승이다 상투같은 둥근 머리와 툭 튀어나온 왕방울눈,주먹코 등이 투박하게 표현 되어있다 다만 남장승의 턱이 각진데 비해 여장승은 부드러운 선을 유지하고있다 두장승은 절을지키는 수호신의 위상에 걸맞게 다문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 위용을 과시하고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민간예술의 특징인 소박함과 친밀함도 잘 드러나있다 관룡사 소유토지의 경계를 위한 표지이지만 그 외에도 사찰토지 안에서의 사냥과 어로를 금지하는 호법,절에잡귀가 출입 하는것을 막아주는 수호신,풍수 지리적으로 허한곳을 보충해주는 비보등을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본다 그런점에서 이 석장승은 불교와 민간 신앙이 결합한 사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 관룡사 석장승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등산기록


↓ 관룡사는 화왕산 동쪽의 아름다운곳에 자리하고있다 화왕산이라는 이름은 오래 되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수없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화왕산 꼭대기에 용이 살고있는 연못이있는데 절을 창건할때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가는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겨 절의 이름을 관룡사라 하였다 임진 왜란을 겪으며 관룡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타 사라지고 오직 약사전만이 그 화를면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영운 이라는 고승은 약사전에 영험한 기운이있어 화를 피했다고여겨 약사전을 자세히 살펴보니 들보끝의 나무가 겹쳐진곳에서"영화5년기349"라는 글자를 발견하였다 이때부터 관룡사에서 빌면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설이 널리퍼졌고 관룡사에는 많은이들이 수행하고 기도하는 영험한 수행자가 되었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관룡사의 역사는 1700 여년이 되어 이땅의 불교 역사와 함께 한다고 볼수있다 관룡사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신라 시대를 대표한다고 할수있는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제295호)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약사전(보물제146호)과 고려시대 불상인 석조여래좌상(보물제519호) 조선시대 건축과 불상의 전형인 대웅전과 목조 석가여래 삼불좌상 및 대좌 등 많은 국가지정 문화재가있다 아름다운 계곡을 흐르는 맑은물과 계절을 장식하는 진달래와 억새 군락지의 길목에있는 관룡사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보고이다

↓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식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기둥위에는 춤이큰 창방과 평방을 놓고 그위에 세부를 옛방식으로 처리한 포작을 올려놓았다 포작은 안팎모두 2출목이며 출목바로위 살미첨차의 끝은 삼각형이다 쇠서는 짧아서 건실한멋을 느끼게한다 우물 천장으로 되어있고 금(錦)단청을 하였다 1965년 해체 복원때 1749(영조25)다시 지을당시 써놓은 상량문이 발견됨으로써 1401년(태종원년)에 처음 세웠으며 임진 왜란때 불탄것을 1617-1618(광해군9)에 다시지었다

↓ 칠성각

↓ 명부전

↓ 원음각은 1634(인조12)에 건립된 사원의 누각이다 건물의 상량문에 따르면 1763(영조39)에 크게 고쳐지었다 1704(숙종30) 대홍수와 산사태로 훼손된것을 고쳐 세운것으로 짐작된다 정면3칸 측면2칸 규모에 들보 5량으로 조성된 이익공계 건물이다 우물 마루로 되어있는 바닥은 대웅전 앞마당과 높이가같아 마당에서 출입 하기가 매우쉽다 불교구를 보관하거나 설법을하는 장소로 쓰였다 예전에는누각아래 중앙칸을 거쳐 대웅전 마당으로 출입 하였으나 지금은 아래 기둥사이를 벽으로막아 스님들의 공부 방으로 쓰고있다

↓ 구룡산 정상


↓ 암봉

↓ 암봉에서 바라본 구룡산

↓ 암봉에서 바라본 조망


↓ 관룡산

↓ 허준 셋트장 (오래 사용하지 않고 관리를 소홀히하여 폐허가 되어가고있다)


↓ 화왕산 산성 동문

↓ 화왕산성


↓ 지나온 허준 셋트장

↓ 산성에서


화왕산(756m) 산성은 화왕산 정상부의  험준한 바위산과 배바위가있는 남봉사이에 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분지를 둘러싸고 화왕산이있다 산성은 전체적으로 가운데 허리 부분이 말 안장같은 형태이며 절벽부를 따라 산성이 축조되어있는 산정식 석성 형태이다 성곽의 둘레는 약2.7km이며 성벽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쌓아올렸다 성내 구조물로는 문지,집수시설,추정건물지,축대시설 등이있다 문지는 동서남북에서 모두 확인되는데 동문과 남문은 복원해 놓았다 집수시설은 못이3곳 샘이9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창녕조씨 득성 설화가 전해지는 못 1기를 복원해 놓았다 산성을 처음쌓은 시기는 대체로 5-6세기로 보며 통일 신라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새로이 사용되는 등 비교적 오랜기간 활용되었을 것으로본다 산성에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태종실록에 보면 태종10년 2월에 화왕산성을 비롯하여 경상도와 전라도의 주요 산성을 고쳐 지었다고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성종대에 그 기능을 상실하여 폐성된 것으로전한다 그러나 임진 왜란때 창녕뿐 아니라 영산 현풍을 아우르는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곽재우 장군이 의병활동의 본거지로 활용하면서 크게 고쳐 지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도 한두차례 중수해 지금까지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다 산성안에는 창녕조씨 득성 설화와 관련된 비가 세워져있다 이 비는 못과함께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로 지정 되어있다


↓ 화왕산 정상에서

↓ 가운데 창녕조씨 득성지와 득성비가 보인다(득성이란 임금님이 하사한 성씨)



↓ 인증샷 한다고 줄을서서 25분정도 기다렸다


↓ 화왕산 정상에서

↓ 서문광장

↓ 서문


↓ 배바위에서 본 화왕산

↓ 수억년전 배를 여기에다 묶어 놓았다하여 배바위라고 한다

↓ 바위 전망대에서

↓ 뒤돌아본 배바위



↓ 능선에서 바라본 암봉

↓ 장군바위 능선

↓ 능선에서 바라본 암봉들






↓ 자하정 쉼터

↓ 창녕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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