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덕유산향적봉(무주)

은 척 2018. 12. 18. 11:36

향적봉(1614m)

일시:2018.12.15일          07:20분 덕천동 부민병원 출발

이동거리: 9.9km            산행시간: 3시간50분(10:30분 출발-14:20분 하산)

코스: 설천봉곤도라승차장-설천봉-향적봉-향적봉대피소갈림길-백련사계단-백련사-백련사일주문-구천동계곡-구월담-월하탄-탐방지원센터-주차장

↓ 설천주차장(곤도라를 타고 상제루에 올라 등산이 시작된다)

↓ 무주 스키장입구

↓ 인공으로 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있다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등산기록

↓ 곤도라 승차장 입구

↓ 타고 올라갈 곤도라

↓ 곤도라를 타고 올라가면서 내려다본 조망



↓ 설천봉 상제루앞 곤도라 승,하차장

↓ 곤도라에서 내려 바라본 조망





↓ 편의시설이 되어있는 상제루


↓ 설천봉에서 내려다본 상제루

↓ 설천봉에서




↓ 향적봉 정상에서

↓ 클릭확대




↓ 향적봉 대피소 방향

↓ 향적봉 정상에서



↓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덕유산은 1975년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행정 구역상으로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 영,호남을 아우러는 4개군에 걸쳐있으며 총229.43㎢의 면적이 공원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동쪽의 가야산,서쪽의 내장산,남쪽의 지리산,북쪽의계룡산과 속리산 등으로 둘러 쌓여있으며 덕유산 향적봉(香積峰 1614m)은 남한에서 4번째로 높은산으로 아고산대 생태계의 보존가치가 높다 북쪽으로 흘러가는 금강과 동쪽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수원지 이기도하다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등산로에는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향적봉에서 중봉을 거쳐 덕유평전,무룡산까지 이르는 등산로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철쭉이 피는계절의 풍경도 일품 이지만 특히 눈이 많이내리는 향적봉 일대의 설경은 장관이다 해발1200m를 지나는 곳부터 수령300~500년생 1000여그루의주목이 군락을 이루어 넓은 면적을 꽉 메우고있다 4월에 꽃이피고 가을에 앵두 모양으로 열매가 아름답게 성숙하고 나무껍질은 적갈색으로 윤기가 흐른다 주목은 향목(香木)으로도 말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적목(積木)으로도 말하고있다 그것은 향적봉의"積"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1552년(명종7)당시 갈천의 학자 임훈(林薰)이 구천동(九千洞) 사찰의 승려 웅(雄)의 안내를받아 덕유산 향적봉으로 오르면서 주목을 가리키며"이나무를 향목으로 부르면서 왜 나무에서 향기가 나지않느냐"고 묻자"이 향목은 미륵불이 이세상에 다시살게 될때가 되어야 향기가난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향적봉기행문"에 남겼다 주목은 목재의 빛갈과 결이고와 마패(馬牌)를 만드는데 쓰였다고한다




↓ 클릭확대






↓ 올려다본 향적봉

↓ 향적봉 정상에서





↓ 하산길 향적봉대피소 갈림길 이정표



↓ 해발약 1000m지점 이정표이다

↓ 백련사계단(白蓮寺戒壇)은 자연석 받침위에 세워진 신라시대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윗 부분에 남아있는 스물다섯개의 여의주 문양은 오랜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계단(戒壇)은 불교의 계법(戒法)을 전수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선덕여왕12년(643) 불경 연구를위해 당나라에 다녀온 자장스님이 지금의 통도사인 구룡연에 금강계단을 만든것이 그 시초이다 자장스님은 이곳에 당에서 가지고온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한후 불교의 계율을 설법하였다 이후로는 전국의 큰 사찰마다 계단을 설치하고 승려들의 계율의식을 행하였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681-691)때 백련스님이 은거하던 곳으로 하얀 연꽃이 피어나는 것을보고 절을 지었다고하며 구천동 열네개 사찰중 유일하게 남은 유서깊은 사찰이다

↓ 삼성각

↓ 백련사 요사채

↓ 명부전

↓ 대웅전


백련사(白蓮寺)는 덕유산 중심부 구천동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사찰로 신라 신문왕(681-692)때 백련선사(白蓮禪師)가 은거(隱居)하던곳에 하얀연꽃이 피였다하여 지었다는 설과 신라 흥덕왕(興德王)5년(830) 무렴국사(無染國師)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절은 구천동사(九千洞寺) 또는 백련암(白蓮庵) 등으로 불리워 졌는데 조선 말기까지 중수를 거듭하여 오다가 6,25때 모두 불타버렸다 1960년대들어 옛 사지가있던 위쪽에 선수당,요사,일주문,대웅전,원통전,명부전,천왕문,우화루 등을 세우며 복원하였다 이곳에는 백련사지(전북기념물제62호) 백련사계단(기념물제42호 ) 매월당부도(전북유형문화재제43호) 정관당부도(유형문화재제102호)등의 유적이있다

↓ 범종각


↓ 고목이 되어있는 돌배나무


↓ 꽃가루가 떨어진다는 우화루

↓ 천왕문

↓ 이부도는 정관당 곽일선(靜觀堂  1533-1609)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연꽃을새긴 받침돌위에 종모양의 탑신을올린 형태이다 정관당은 승유억불정책에 의해 침체된 조선불교의 중흥과 불교보급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스님으로 중종28년(1533) 충남 영산에서 태어났다 어린나이에 승려가된 정관당은 말년에는 서산대사로 부터 불법을 배웠으며 임성당 충언과 운곡당 충휘 등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그는 특히 무주 구천동에서 선풍(禪風)을 전하는일에 온정성을 다하다가 광해군1년(1609)이 입적하였다


↓ 올려다본 천왕문

↓ 종모양의 이 부도는 매월당 설흔(梅月堂 雪欣) 스님의 사리를 모신것으로 조선 정조8년(1784)에 설흔 스님의 조카인 임선행(林善行)이 세웠다 받침돌과 부도의 윗부분에 불교의 상징인 연꽃을 화려하게 새겨 세련미를 준것으로 높이는 1.6m이다 설흔 스님은 정조8년(1785) 백련사에서 생을 마칠때까지 이지역 불교 발전을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분으로 안국사(통영) 극락전내 불상뒤에 그림도 스님의 감독하에 조성되었다

↓ 탄허스님이 글을썼다는 백련사 일주문


↓ 이곳 백련사지(白蓮寺址)는 신라 신문왕(681-691)때 지은 백련사가 있던곳이다 원래의 건물은 6,25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있는 건물은 1962년 이후에 다시 지은것이다 백련사는 백련스님이 하얀 연꽃이피는 모습을보고 세운절로 구천동 열네개 사찰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다 경내에는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명부전,선수당,종각,보제루,천왕문,백련사계단,정광당부도,매월당부도 등이 남아있다  

↓ 구천동계곡








↓ 구천동 탐방지원센터



'나의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학산(칠곡)  (0) 2019.01.08
덕유무룡산  (0) 2018.12.25
관룡산(창녕)  (0) 2018.12.12
함양독바위  (0) 2018.12.04
용화산-오봉산(춘천)  (0) 2018.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