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산(779m)
일시: 2018.11.11일 06:10분 덕천동 부민병원 출발
이동거리: 14.7km 산행시간:5시간30분(11:20분 출발-16:50분 하산)
코스: 큰고개-용화산-안부기점(득남바위갈림길)-고탄령-전망바위-수불무산갈림길-사야령-전망대-절벽-임도-46번국도(38선비석)-배후령고개-1봉~4봉-오봉산-홈통바위-망부석-갈림길이정표-선동계곡-식암폭포-해탈문-청평사-영지-구성폭포-오봉산장-주차장(대형)
↓ 큰고개
↓ 큰고개 계단으로 올라간다
↓ 능선에 오르면 명품 소나무를 만날수있다
↓ 등산 트랙지도
↓ 등산지도
↓ 등산기록
↓ 능선에서
↓ 만장봉과 용화산
↓ 바위 전망대
↓ 암릉길(오른쪽은 수십미터 낭떠러지)
↓ 용화산 이정표 (용화산 정상에 올랐다가 빽하여 이곳에서 득남바위 방향으로 진행)
↓ 용화산 정상
↓ 뒤돌아본 용화산과 만장봉
↓ 큰바위
↓ 바위 전망대에서
↓ 명품 소나무
↓ 뒤돌아본 큰바위 능선
↓ 가야할 오봉산과 경운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 고탄령 이정표
↓ 수불무산 갈림길에서 가야할 사야령은 90도 꺾어서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 사야령 이정표
↓ 능선을 다 내려오면 만나는 임도에서 화살표 방향 좌측으로 내려간다 (직진하여도 배후령 고개에 갈수있다)
↓ 46번국도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오봉산 산행기점인 배후령 고개이다
↓ 46번국도에 내려오면 38선 비석이있다
↓ 오봉산 들머리 배후령 고개에서 계단을타고 올라간다
↓ 능선에 오르면 첫번째 이정표가있다
↓ 명품 소나무
↓ 능선길
↓ 제4봉 보현봉이다
↓ 뒤돌아본 3봉 문수봉
↓ 제4봉 보현봉에서 바라본 간동
↓ 뒤돌아본 2봉능선
↓ 오봉산은 높이779m의 아담하면서도 한국의 미를 간직한 명산으로 배치고개를 사이에두고 부용산(882m)과 마주보고 있고 주위에 봉화산,수리봉 등이있다 제1봉(나한봉),제2봉(관음봉),제3봉(문수봉),제4봉(보현봉)제5봉(비로봉) 5개의 암봉이 줄지어있어 오봉산이라 하며 경운산 이라고도한다 각 봉우리의 표지석이 없어 능선에서 보면 7~8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1봉에서 5봉을 구분 하기가 쉽지않다 3봉(문수봉)과 4봉(보현봉)은 칼등같은 암릉에 쇠줄을잡고 오르내려야 하는 절벽같은 낭떠러지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남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청평사 계곡을 이루어 소양호로 흘러들고 고려광종 24년에 영현선사가 창건한 청평사에는 청평사 회전문(보물제164호) 3층석탑이 남아있다 대웅전을 비롯한 부속건물을 증축 하고있으며 그밖에 입구 우측으로는 구성폭포,공주굴이 좌측으로는 공주탕이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정원터가있어 옛정원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으며 소양호를 끼고있어 산행뒤에 배를타고 유람할수 있는 여유와 5월에는 민속 축제인 소양제가 열리고 송어,향어,춘천 막국수가 유명하다
↓ 오봉산을 내려오면 소양호가 바라보이는 능선에 명품 소나무가있다
↓ 소양호
↓ 홈통바위
↓ 갈림길 이정표(오른쪽으로는 선동계곡을 내려가 청평사로 가는 완만한 코스이고 왼쪽 돌계단으로 직진하면 가파른 급경사길로 청평사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 왼쪽 직진 계단길은 급경사이고 오른쪽 나무계단은 완만한 선동 계곡길이다
↓ 식암 폭포는 높이10m 정도의 2단폭포이다 아래쪽 폭포위에 선동암터와 위쪽 폭포위에 진락공 이자현 세수터가있다
↓ 식암 2폭포 (진락공 이자현(李資玄)1061~1125년)은 고려시대 중기의 문신,학자,문인으로 본관은 인주(仁州)이고 자는진정(眞靖)이고 호는 식암(息庵) 청평거사(淸平居士)희이자이며 시호는 진락이다 1089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어 벼슬을거쳐 대악 서승이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춘천의 청평산에 들어가 아버지가 세웠던 사찰 보현원을 문수원이라 이름을 고치고 중건하였다 여기에 당과 암자를지어 이곳에서 베옷과 나물밥으로 생활하며 학문연구와 선을즐겼다 문벌과 배경이 있었으나 관직에 욕심이없어 예종이 사람을시켜 다향과 금백을 보내어 여러번 불렀으나 모두 사양하고 문수원에서 평생을 수도 생활로 일관 하였으며 사후 진락의 시호가 내려졌다)
↓ 모든 번뇌를 벗어 버린다는 뜻을 지니고있는 1979년 향봉이 세웠다는 해탈문
↓ 청평사 돌담
↓ 이곳에서 조금 위에있는 공주탕은 공주설화에서 공주가 목욕재계를 하였다는 곳으로 중국 당나라 테종의 딸 평양공주가 상사뱀을 구성폭포 아래에 떼어놓고 절벽에 올라와 인간 세상에서 물든마음을 깨끗이 씻어내고 스님의옷을 만들어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한공덕으로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 하였다는 전설이있다
◈윤회: 생명이 있는것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불교사상
↓ 청평사
↓ 경운루
↓ 범종각
청평사는 고려 광조24년(973) 영현선사가 창건하여 백암선원 이라하였다 그뒤 폐사가 되었다가 문종22년(1068) 이의가 중건하고 보현원 이라하였으며 선종6년(1089) 이의의 아들인 이자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자 도적이 없어지고 호랑이와 이리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에 산이름을 청평(淸平)이라하고 절이름을 문수원 이라한뒤 견성암,양신암,칠성암,등운암,복희암,지장암,식암,선동암 등 8암자를 짓고 크게 중창하였다 충숙왕14년(1327) 원나라 황제 진종의 비가 불경과 재물을 시주하였고 공민왕16년(1367)에 나옹이 복희암에서 2년동안 머물렀다 조선 명종10년(1555) 보우가 이곳에와서 청평사로 개칭하여 대부분 건물을 신축하였다 숙종37년(1711)에 환성이 중수 하였으며 영조4년(1728)에 각선이 삼존불상을 조성하였다 6,25전쟁때 구광전과 사성전 등이 소실되어 1977년 공철이 극락보전과 삼성각을 중건하고 1979년 향봉이 해탈문과 적멸보궁을 1984년 서호가 요사채와 청평루,서향원을 1988년 석진이 대웅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해서 보물제165호로 지정된 청평사회전문과 극락보전,적멸보궁,청평루,서향원,해탈문,불각 1동이 있으며 조금 떨어진곳에 요사채가있다 사지(寺址)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 되어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불전,회랑문 등의 초석을 통하여 전성기의 규모를 파악할수있다 이곳의 삼층석탑은 공주탑 이라고도 하는데 현재2층 옥개석만 남아있고 3층이상의 없어진 2층 옥개위에 잡석들을 올려놓았다 이탑은 상삿뱀에 몸이얽혀 갖은 고생을 하던 당나라 태종의 평양공주가 이절에와서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행한뒤 상삿뱀을 떨쳐 버리게되자 이소식을 들은 당나라 태종이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세웠다는 전설이있다 또한 이절에있는 고려정원은 지금까지 밝혀진 정원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일본 교토의 사이호사 고산수식 정원보다 200여년 앞선것으로 밝혀졌다 1981년 조사단의 지표발굴 및 측량조사에서 원형 그대로 보전 되어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연못인 영지(影池)와 거기서 400미터쯤 떨어진 청평사계곡 하류에서 정원 조성용 암석및 석축을 발견하였다 그곳에서 다시2km 떨어진 상류에서는 이정원을 만든 이자현이 새긴 "청평식암(淸平息菴)"이라는 각자가 발견되어 기록상에 나타나있는 영지중심의 대규모 고려정원 임이 확인되었다 또 구성폭포에서 식암에 이르는 2km 9000 여평의 방대한 지역에는 계곡을따라 주변의 자연경관을 최대한으로 살려 수로를 만들고 계곡의물을 자연스럽게 정원안으로 끌어들여 영지에 연결 시켰으며 주위에 정자와 암자등을 세우는등 자연의 습리에 순응하며 선(禪)을 익히는 정신수양의 도량으로 짜임새있게 까꾸어 졌음이 밝혀졌다 영지는 청평사뒤의 오봉산이 비치도록 되어있으며 연못가운데 세개의 큰 돌이있고 그사이에 갈대를심어 단순 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몄다
↓ 나한전
↓ 대웅전
↓ 관음전
↓ 극락보전
↓ 수령 530년이 되었다는 주목나무
↓ 회전문은 청평사의 대문으로 조선 명종5년(1550)에 보우대사가 건립하였다 가운데칸을 출입문으로 하고 양쪽 1칸씩을 사천왕의 조각상을 세우거나 사천왕 그림을 걸도록 하였던 것으로 추측이된다 이문은 중생들이 윤회 전생을 깨우치게 하기위해 만들어 졌으며 불교의 경전을 두었던 윤장대를 돌린다는 의미에서 그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이문을 지나자 공주에게 붙어있던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 하였다는 전설이있다
↓ 청평사 약수
↓ 영지(影池)는 고려시대 이자현이 조성한 것으로 조선초기 김시습의 한시에도 언급되어있다 영지는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연못으로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다고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도 연못에 물결이 일지않으면 부용봉이 물속에 그림자처럼 비치는 모습을 볼수있다 예전에는 장마가 지거나 가물이 들어도 물이 늘거나 줄지 않았다고한다 이렇게 정원의 일부처럼 만든 연못을 연지라고 하는데 사찰이나 궁궐에 이런 연못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 영지명문바위(影池銘文)의 윗면에 한문으로 지은 시가 새겨져있다
심생종종생(心生種種牲):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것들이 생겨나고
심멸종종멸(心滅種種滅): 마음이 사라지면 모든것들이 사라지네
여시구멸이(如是俱滅已): 이와같이 모든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곳곳이 모두가 극락 세계로구나
이시는 이자현 스님이 깨우침을 얻고나서 지은 시라는뜻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알려져있다
↓ 구송폭포(九松瀑布)는 주변에 소나무 아홉 그루가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폭포위쪽에 사람이 살수있는 구송대가있다 구송폭포는 환경의 변화에따라 아홉가지 폭포 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구성폭포(九聲瀑布)라고도 불린다 이 폭포에서는 일년내내 많은양의 물이 쏟아져 내린다 특히 폭포의 양쪽에 수직으로 펼쳐진 절벽은 단정한 모습의 선비처럼 아름답다 구성폭포는 춘천 서면 삼악산의 등선폭포,남산면 문배마을의 구곡폭포와 함께 춘천의 3대 폭포로 꼽힌다
↓ 거북바위는 자연 암석으로 예전부터 거북이가 물을 바라보게 되면 청평사가 크게 융성할 것이라는 전설을 가지고있다 이 바위의 아래쪽에 "신규선" 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사람은 1915년에 청평사를 정비하고 청평사의 역사책인 청평사지(淸平寺誌)를 편찬 하도록 한 사람이다
↓ 공주 상으로 설화에는 중국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는데 태종이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서 살았다 당나라 궁궐에서는 상사뱀을 떼어내려고 여러 치료방법을 찾아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공주는 궁궐을 나와 방랑을 하다가 이곳 청평사에 이르게 되었다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공주탕에서 몸을 께끗이 씻은 공주는 스님의옷인 가사를 만들어 올렸다 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끊고 해탈하였다 이에 공주는 당나라의 황제에게 이사실을 알려서 청평사를 고쳐짓고 탑을 건립하였는데 이때 세운탑을 공주탑 이라고하며 공주가 목욕한곳을 공주탕 이라한다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난곳을 회전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 공주상이 있는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