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굴산(897m)
일시: 2018.10.21일 08:30분 덕천동 부민병원 출발
이동거리: 8.2km 산행시간: 4시간40분(10:10분 출발-14:50분 하산)
코스: 내지리자굴산표지석-쉼터-쉼터-절터샘-바람덤-자굴산-둠배기먼당둘레길이정표-쇠목재-패러글라이딩갈림길-한우정-한우산(빽)-한우정-도로-한우산생태숲홍보관-쇠목재
↓ 1013번 지방도로 내지리 자굴산 등산로입구
↓ 1013번 지방도로에서 자굴산 등산이 시작되는 나무데크 계단
↓ 내지리 마을풍경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등산기록
↓ 완만한 등산길
↓ 자굴산 정상 700여m 앞에있는 절터샘
↓ 바람덤 암벽
↓ 바람덤에서 내려다본 가을풍광
↓ 자굴산 정상으로 오르는 등로
↓ 능선 전망대에서
↓ 능선삼거리 이정표
↓ 자굴산 정상에서
↓ 자굴산은 해발897m인 경남의 중심부인 의령의 진산이다 등산객 취향에 따라 급경사,완경사를 조절할수 있어 다양한 산행코스를 가지고 있으며 꽃길과 숲길,오솔길 등 사계절을 사색 할수있는 산책로가 조성 되어있다 산중턱에는 옛날 신선이 놀고갔다는 강선암과 갑을사지,보리사지,양천사지 등의 사찰터가 남아있다 그리고 동쪽 산기슭에는 약3m깊이의 동굴과 금지샘 이라는 천년동굴 샘이있다 금지샘에는 병자호란때 청나라 군사가 이곳에 침입하여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자 물이 갑자기 말라 버렸다는 전설이있고 또 조선시대 남명 조식 선생이 그 경관에 홀려서 세월가는중 모르고 노닐었다는 명경대도 있다
↓ 자굴산 정상 이정표
↓ 자굴산 정상에서
↓ 자굴산에서 내려가고있다
↓ 자굴산 둘레길이 이어지는 둠배기먼당 이정표
↓ 쇠목재
↓ 쇠목재에서 한우산 오르는 입구 돌탑
↓ 한우산 오르는 능선에서 뒤돌아본 자굴산
↓ 능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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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선에서
↓ 한우산 도깨비 숲
↓ 한우정
↓ 한우산을 오르면서 바라본 풍광
↓ 한우산 정상에서
↓ 한우산(836m)은 자굴산으로 부터 이어지는 산맥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깊어 곳곳에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절승이 즐비하며 가운데 계곡이 시원스럽게 흐르고있다 이 계곡은 여름에도 찬비가 내린다는 찰비계곡 이라고도 부르며 한우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길이가 3km에 이른다 곳곳에 전설이 서려있는 농소와 각시소 등이 운치를 더하는 가운데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숲이 울창함을 더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겨울이면 계곡따라 즐비한 바위 틈새에서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려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한다 또한 영화 이광모 감독의 작품인 안성기,송옥숙 주연의"아름다운시절"에서 한우산을 내려오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다 영화에서 처럼 안성기,송옥숙 일가의 몰락하는 가정사가 이 산자락에 고스란히 투영 돼어있다 우마차를 끌고 산자락을 굽이굽이 내려오는 인생의 역경을 상징화한 마지막 장면이 이곳 풍경에서 있었다 흐르는 폭포수가 곳곳에 소를만들어 놓은 찰비계곡을 많이 찾고있으며 지금은 계곡 아래쪽에 있는 벽계 관광지와 벽계 저수지 등으로인해 종합 관광지로 발돋움 하고있어 야영객과 낚시꾼 등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오고있다
↓ 한우산 정상에서
↓ 한우산 생태숲 홍보관
↓ 만개한 들국화
↓ 쇠목재의 풍경
◎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호암 이병철 선생의(삼성그룹창업자) 생가를 방문하였다
↓ 이병철 선생의 생가 대문
↓ 사랑채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湖巖 李秉喆 先生生家)는 1910년 2월12일 한국경제 발전을 이끈 지도적 인물인 호암 이병철 선생(1910~1987)이 태어난 생가이다 선생은 경주이씨 찬우공과 안동권씨의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1926년 순천박씨 두을여사(사육신의 한분인 박팽년의 후손)와 혼인 하였다 여섯살때부터 조부문산홍석공(祖父文山洪錫公)이 세운 서당 문산정(文山亭)에서 유학경전을 익히고 신학문에 입문하여 진주의 지수 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서울로 옮겨 수송 보통학교 중동학교에서 수학 하였다 1930년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유학하여 경제학을 공부 하였으며 귀국후 일제식민지 시대에 민족경제 육성의 절실함을 깨달아 1938년 삼성을 창업하였다 선생은 창업이래 인재 제일함리 추구의 경영 철학과 신념을 바탕으로 삼성을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발전시켜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또한 성균관 대학교 운영을 통해 인재육성에 앞장섰으며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문화,예술,언론 및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삼성은 선생의 유지를 계승하여 경영을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의 질중시신경영(質重視新經營)과 창조경영(創造經營)을 바탕으로 하여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 하였다 선생이 1987년 향년78세를 일기로 타계하자 정부는 한국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훈격(勳格)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追敍)하였다 호암선생이 태어난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장내마을의 이곳은 1851년 선생의 조부꼐서 전통한옥 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그동안 몇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곡식을 쌓아놓은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있는 주변산의 기(氣)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터에 혈(穴)이되어 맺혀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때문에 재물이 쌓일수밖에 없는 명당중의 명당(明堂)이라고 알려지고있다
↓ 호암 이병철 생가의 뒤에있는 이암벽의 기를 받으면 부자가 된다고한다
↓ 안채
↓ 장내마을 입구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