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산(741m)
일시: 2018.10,07일 08:00분 사하구 낙동초등학교 출발
이동거리: 9.6km 산행시간: 4시간30분(11;30분 출발-16:00분 하산)
코스: 남창주차장-하곡동계곡-몽계폭포-안부사거리-사자봉(빽)-안부사거리-상왕봉-기린봉-722봉-구암사갈림길-백학봉-영천굴-약사암-백양계곡-백양사-주차장
↓ 남창주차장
↓ 도로따라 150여미터 올라간다
↓ 몽계폭포 방향으로 진행한다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등산기록
↓ 몽계폭포는 상왕봉과 사자봉 사이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합류하여 약20m에서 떨어지는 폭포로서 조선시대 학자인 하곡 정운용 선생이 폭포의 이름을 명명 하였으며 바위에"몽계폭포(蒙磎瀑布)"라는 글을 새겼다
↓ 몽계폭포 이정표
↓ 몽계폭포 이후부터는 평탄한길이 이어지고있다
↓ 안부 사거리 오르는길
↓ 안부 사거리에서 우측 사자봉으로 올랐다가 빽하여 의상봉으로 간다
↓ 사자봉에서 바라본 조망
↓ 백암산 정상 상왕봉
↓ 내장산으로 이어지는 이정표
↓ 내장산 분기점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망(클릭하면 확대됨)
↓ 하산길 능선 멋진 소나무에서
↓ 능선에서
↓ 클릭하면 확대됨
↓ 헬기장
↓ 구암사 갈림길
↓ 능선 전망대에서
↓ 백학봉
↓ 능선에서 내려다본 백양사와 조망
↓ 가파른 계단 데크길
↓ 영천굴 영천수는 조선후기 호남지역에 대 유행병이 나돌아 전라감사 홍락인이 영조(1724~1776)왕에게 상소를 올리니 "영지(靈地)를찾아 크게 기도를 올리도록 하라"고 명하자 백양사 바위에 국제기(國際基)라 새기고 영천굴 바위굴에서 솟아나오는 영천수를 제단에 올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약수를 마시게하니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에 전라감사 홍락인이 보은의 의미로 그곳에 암자를짓고 영천암 이라 하였는데 그후로 많은 사람들이 영천수를 마시고 질병을 낫는 의지처가 되었으나 화재로 소실 되었던것을 2013년에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있다
↓ 영천암
↓ 영천굴 안에있는 불상
↓ 암벽에있는 영천굴
↓ 약사암
↓ 약사암뒤 암벽
↓ 약사암에서
↓ 백암산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있다 천년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줄기는 강직하고 키가20m까지 자라는 상록 침엽수이다 잎은2㎝ 정도로 광택이나며 뒷면은 담녹색이고 두줄의 백색 기공선이있다 비자나무와 비슷한 개비자나무는 키가작고 그늘에 잘살며 추위에 견듸는힘이 강해서 경기도 지방까지 자라고있다 잎끝이 부드러워 유연하며 바늘같이 날카롭고 단단한 비자나무와 구별된다 열매는 타원형으로 양끝이 뾰족하고 다음해 9월~10월에 녹갈색으로 익으며 민방에서는 구충제로 쓰인다
↓ 청량원입구
↓ 백양사 사천왕문은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천왕이 불법을 수호하면서 악귀가 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백양사의 출입문이다 지금의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송만암 대종사가 백양사를 다시 지을때 건립 되었으며 1945년 8월 낙성식을 치르고난 다음주에 해방이되어 해방사천왕문 이라고도 불린다 건축물은 앞면3칸 옆면2칸의 맞배 지붕으로 중앙1칸은 문으로 이용되고 좌,우 두칸에는 사천왕이 모셔져있다 내부천장 중앙은 우물정(井) 모양이고 주변은 경사진 빗천장이며 공포(拱包)는 익공과 주심포를 병용한 절충형이다 오른쪽 칸에는 동쪽을 지키는 파란얼굴의 지국천왕(指國天王)이 비파를 가지고있으며 남쪽을 지키는 빨간얼굴의 증장천왕(增長天王)이 보검을 들고있으며 왼쪽칸에는 서쪽을 지키는 하얀얼굴의 목천왕(目天王이 용과 여의주를,북쪽을 지키는 까만얼굴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있다
↓ 범종각
↓ 백양사 종무소
↓ 대웅전은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에 모시고 다양한 예불과 의식이 치러지는 사찰의 중심이되는 법당이다 지금의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 대종사가 여섯번째로 다시지었다 뒤쪽 백학봉의 드센기운을 막기위해 대웅전은 앞면5칸,옆면2칸의 팔짝지붕(지붕앞면이"八"자형태)으로 높게 지었으며 높직한 장대석으로 다듬은 3단의 기단에 원형 주춧돌을 놓고 아래가넓고 위가좁은 민흘림 둥근기둥을 세웠다 내부천장은 나무 재료가 보이지않게 우물정(井) 모양이고 바닥역시 우물 마루이다 화려한 단청은 조선후기 불화의 맥을잇는 보응스님의 제자 일섭스님의 마지막 작품으로 희귀성이 인정되어 눈길을 많이끈다 특히 천장의 봉황,용 등의 조각은 다른곳에서 찾아보기 드물고 엄숙하고 위엄있는 천상 세계를 실체감있게 표현하고있다
백양사는 백제무왕33(632)년 여환이 창건 하였으며 1034년(덕종3)중연이 중창하면서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였고 1350년(충정와2) 각진국사(覺眞國師)가 3창하였다 15세기에 백암사로 바뀌었다가 16~19세기 중반에 다시 정토사로 고쳤다 다시 백양사(白羊寺)로 개액(改額)한것은 1574년(선조7) 환양이 중건하면서 부터이다 환양이 백양사에 주석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니 백양이 경을읽는 소리를듣고 몰려오는 일이많아 절이름을 백양사라 개칭하고 승려의 법명도 환양이라 하였다 그뒤 1786년(정조10) 환성이 중건하였고 1864년(고종1) 도암이 중건 하였으며 1917년 송만암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만암은 45세때부터 백양사 주지직을 맡아 30년가까이 주석하면서 불사에 진력하는 한편 강원(講院)을 개설하고 중앙불교 전문학교장을 겸임하면서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백양사는 일제강점기 31본산중 하나였으며 현재 부속말사 26개소를 관장 하고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보전,명부전,칠성각,진영각,천왕문,선실,요사채와 범종,법고,목이운판 등의 사물을 소장 하고있는 범종각이있다 이가운데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43호인 백양사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이 백양사를 중건할때 건립한 것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979년 보각행이 조성하여 새로모신 10척높이의 불상 그 왼편에 용두관음 탱화가 봉안 되어있다 또한 대웅전내 오른쪽으로 바늘 귀를꿰는 모습,등을긁는 모습등 해학적인 모습을한 나한상 23체가 봉안되어있다 극락보전은 400여년전에 지은것으로서 백양사 건물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영조,정조대에 지은 건물인데 건평50㎡에 세워진 정면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1973년 단청 하였으며 1976년 보수하였다 명부전은 1896년에 건립된 것으로 정면5칸 측면3칸의 맞배 지붕이며 각 주두마다 공포가 장식 되어있다 전내에는 흙으로 조성한 시왕(十王)과 목조지장보살상(木造地藏菩薩像)이 봉안 되어있다 대웅전 뒤편의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하는 팔층탑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3과가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전에는 백양사에서 배출 주석하였던 휴정,유정,모운,태능,범해 등 18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모신 석종모양의 탑과 비가있다 백양사의 산내 암자로는 약사암과 영천굴,1351년에 건립한 청류암 1981년에 지은 수도도량 물외암,천진암 등이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부터 있어온 운문암 등 많은 암자들이 6,25전쟁때 불타버렸다 이중 운문암은 6,25전쟁전 까지만해도 백양사 8개암자중 대표 암자였으며 백양사뒤 계곡을끼고 3.5km 위에있다 고려때 각진이 창건했다는 운문암은 백양사 수도도량중 전망이 가장 좋은곳에 있으며 조선시대의 신승 진묵의 일화가 전해오고있다 진묵이 임진왜란 직전 이 암자에서 차를 달이는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날 전체 대중이 차를달이는 운문암 중을 조사로 모시라는 현몽을 한뒤 진묵을 조실(祖室)로 앉혔다 어느날 진묵은"내가 올때까지는 이불상을 도금하지 말라"는 말을남기고 자취를 감추었 으므로 지금도 그 불상은 거뭇한 그늘색을 띤채 진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있다 또한 천신제 제사를 올리던 국제기는 영조때 호남지방에 대유행병이 나돌아 호남 감사가 영조에게 상소를 올리자 영지를 택하여 크게 기도를 드리라고 하였으므로 이곳 바위에다"국제기(國祭基)를 음각하여 새기고 제사를 지내게 된것이 그 유래이다 절입구에서 20분 거리인 약사암은 전망대격으로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백양사의 모습이 한눈에 조망된다 절경내의 맞은편에는 난대성의 늘푸른 나무인 비자나무 5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뤄 천년기념물 제53호로 지정이 되었으며 주차장에서 절로 오르는 0.5km구간에 우거진 수백년된 아름드리 갈참나무 거목들, 3000여 그루의 고로쇠 나무와 비자림은 산림욕 하기에 더없이 좋은 숲이다
↓ 칠성전과 진영각
↓ 백학봉과 대웅전의 모습
↓ 극락보전은 불교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불(主佛)인 아미타불을 모신 불전으로 백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백양사 옛이름이 정토사(淨土寺)에서 알수있드시 이곳이 서방극락 정토임을 상징하는 역할을 해왔다 건축물은 앞면3칸,옆면3칸의 맞배지붕(지붕옆면이"人"자형태)으로 기둥과 기둥사이에 포가 올려진 다포 건물이다 내부에는 가운데에 아미타불,양옆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에 협시보살로 모시고 불상뒤에 후불탱화가 있으며 천장은 우물정(井)자 모양이고 양쪽 벽면에는 단색으로 단단하게 그려진 벽화가있다 극락보전을 짓는데 문정왕후(1501~1565)가 참여하였고 1574년(선조7)에 건립 되었다는 기록이있다 현재 건물은 네번째로 다시 지었으며 비교적 옛건축양식 원형을 간직하고있어 귀중하고 가치있는 건축물로 평가된다
↓ 명부전
↓ 경내
↓ 백양사 하천의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