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산(954m)
일시: 2014.01.19일 08:50분 덕천동 코롱스포츠 앞 출발 차량이동시간: 1시간 소요
도상거리: 13km 산행시간: 6시간(10:00분 출발-16:00분 하산)
코스: 24번국도 굴다리-원서리마을-수리봉갈림길이정표-수리봉-전망대-문바위-사자봉-석골사갈림길-헬기장-억산-깨진바위-팔풍재-900봉-범봉-묘-전망대-갈림길이정표-갈림길이정표-석골사-원서마을-24번국도굴다리
↓ 원서마을 입구
↓ 수리봉 가기전 전망대에서 본 조망
↓ 등산지도
↓ 등산트랙지도
↓ 등산기록
↓ 전망대에서 한컷
↓ 수리봉
↓ 수리봉 소나무
↓ 수리봉 전망대에서 본 조망
↓ 문바위
↓ 문바위가 보인다
↓ 멀리서 이 봉우리를 보면 엎드려있는 사자와 같다하여 사자봉이다
↓ 사자봉 지나 전망대에서 본 조망 멀리 옹강산과 문복산이 보인다
↓ 억산 정상에 세워진 이정표
↓ 정상
↓ 억산에서 지나온길을 되돌아본 헬기장
↓ 억산은 영남 알프스의 운문산 서쪽에 위치한 산으로 운문산,구만산 종주의 중심 산으로 억산이라는 이름은 수많은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라는 의미의 억만건곤에서 유래 된것으로 전해지며 하늘과 땅 사이의 명산 가운데 명산으로 석골사 뒷산으로 불리는 억산은 생긴 모양이 독특해 영남알프스 주요 봉우리 중 멀리서도 식별이 가장 쉬운 암봉으로 억산 정상부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로 보이지만 다가가면 신기 하게도 가운데가 두갈래로 갈라져있다 그 사연의 전설을 보면 용으로 승천 하지못한 대비사 동자승이 이무기로 변해 날아가면서 그 꼬리로 산 정상부인 암봉을 내리쳐 바위가 두동강 났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있다
↓ 정상밑에 거대한 깨진바위
↓ 정상에서 본 조망
↓ 팔풍재 이정표
↓ 범봉
↓ 석골사는 석굴사 또는 노전사 등으로도 불렸는데 신라 진흥왕 12년(560)비허 선사께서 창건 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비허 선사께서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하며 운문사를 중창한 보양 국사와 친분으로 두 선승이 서로 왕래를 하였다는 이야기와 혜공왕 9년(773)에 법조 대사가 창건 하였다는 설도 있지만 법조께서는 중창을 한것으로 보인다 운문사의 보양국사는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로 태조 왕건이 그 은혜에 보답 하고저 운문사를 최대 번성하게 하였다 그 영향으로 석골사도 암자를 9개나 거느리며 발전을 하였는데 운문산 중턱에 남아있는 상운암도 그 당시의 암자로 추정되며 신라때 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였다고한다 선조 25년(1592)임진 왜란이 일어나자 왜병은 삼랑진 작원관을 함락하며 밀양으로 계속 진격해오자 오한,손기양,이경흥,이경승 형제 등은 이곳 석동산에서 의병을 일어켜 석골사를 본거지로 왜구의 침략에 항거하였다 영조 11년(1753)에 함화 대사께서 빛바랜 석골사를 다시 중창 하였으나 6.25가 발발하고 빨갱이가 석골사를 은거지로 삼는것을 우려해 우리 토벌대에 의해 불을질러 완전히 소실 되었으나 폐허로된 석골사는 1965년 마을 신도들에 의해 중창된이후 다시 대광전,산신각,요사채 등을 새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석골사는 일천한 역사에 비해 남아있는 유물이 거의없고 대광전의 석조아미타삼존불과 절구석탑재료 등만 남아있으며 현재 석골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인 양산 통도사의 말사로 되어있다
↓ 석골사 극락전
↓ 석골사 경내
↓ 석골사 입구 보이는 시멘트 다리를 건너가면 수리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있다
↓ 원서마을 사과밭 마을 전체가 사과밭 뿐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