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선운산(고창)

은 척 2017. 11. 8. 15:01

선운산(336m)

일시: 2017.11.05일            08:00분 덕천동 부민병원 출발             차량이동시간: 3시간40분 소요

이동거리: 12.3km             산행시간: 4시간20분(11:50분 출발-16:10분 하산)

코스: 주차장-매표소-선운사돌담-석상암입구-마이재-선운산(수리봉)-참당암갈림길-능선갈림길-삼각점봉우리(돌탑)-견치산입구삼거리-소리재-천상봉-용문굴-낙조대-천마봉-도솔암-장사송-도솔천-자연의집-선운사-매표소-주차장

↓ 주차장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안내도인데 유스호스텔 방향으로 진행하면 경수산으로 가고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마이재에 올라 선운산으로 갈수있다

↓선운사 일주문

↓ 선운사 가는 길목이 단풍으로 물들었다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등산기록

↓ 선운사 돌담길에서 마이재 방향 우측으로 들어간다

↓ 선운사 템플스테이


↓ 석상암 갈림길

↓ 마이재 이정표

↓ 선운산 정상(수리봉)




↓ 선운산 정상에서





↓ 선운산 정상에서 1.9km지나온 능선 이정표

↓ 돌탑봉에서




↓ 돌탑봉에서 바라본 조망




↓ 견치산 입구에서 견치산 까지는 왕복 1km이다

↓ 소리재로 내려오는 능선의 산죽

↓ 소리재

↓ 천상봉에서


↓ 용문굴은 선운사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굴이며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암 위쪽에 자리하고있다 백제 위덕왕24(577)에 검단선사가 절을 세울 목적으로 선운산을 찾아와 둘러보니 선운사를 지을 자리의 연못에 용이 한마리 살고있어 그 용을 검단선사가 쫓아내자 급히 도망치다가 바위에 부딪히며 굴이 만들어 졌다고한다


↓ 대장금 드라마에서 장금이 어머니 무덤인 돌무더기 이다

↓낙조대에서



↓ 병풍바위 오르는 철계단

↓ 천마봉에서

↓ 천마봉




↓ 도솔암 극락보전

↓ 도솔암 극락보전의 불상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는 특이한 보전이다

↓ 내원궁으로 오르는 길목

↓ 나한전을 응진전 이라고도 하는데 나한은 아라한을 줄인 뜻으로 세상의 존경을받고 공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존자라는 뜻에서 응공이라 풀어 말하고 번뇌를 끊고 더이상 생사윤회를 거듭하지않는 성자로서 최고의 깨달음을 이룬자 이므로 진리에 상응한다는 뜻에서 응진이라 풀어말한다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우침을 얻은 성문들을 네단계로 나누는데 수다원,사다함,아나함에 이어 그 마지막 단계가 아라한인 것이다 아라한은 6가지의 신통력과 8가지 해탈법을 갖추어 번뇌를 아주떠난 부처에 버금가는 성자이다 부처와 이들 아라한을 함께모신 전각을"붓다"당시의 회상을 이루었다는 뜻에서 응진전 이라 하기도하고 나한전 이라고도 한다 삼장에 두루 통달한 나한들은 삼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외도들을 굴복시켜 정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사명을 갖고 열반에 들지 않고 수명을 연장하여 세상의 곳곳에 머무르며 장차 미륵불이 하생 할때까지 교화 하겠다는 선 지식들이다 그래서 나한 법주기에는 이들 16나한들의 명칭과 각각 머무르는 곳과 권속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이들의 정법수호를 설하였다 16나한은 제1 빈도라 존자를 비롯하여 맨 마지막16 주도반탁가 존자까지 있다

↓ 나한전 바로옆에 있는 마애불상은 고려 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이불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큰 마애불상 중의 하나로 미륵불로 추정된다 지상3.3m의 높이에서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불상의 높이는15.6m 폭8.4m가되며 연꽃 무늬를 새긴 계단모양의 받침돌까지 갖추었다 머리위의 구멍은 동불암 이라는 누각의 기둥을 세웠던 곳이다 명치 끝에는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있다 조선말에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전한다 이 비결록은 19세기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 갔다고한다


↓ 내원궁은 천인암 이라는 기암 절벽과 맑은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곳으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상 도솔암 이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바위위에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 건물은 작은 규모 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준다 이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17년(1817)까지 몇차례 보수한 것으로 서쪽 암벽에는 석불이 새겨져있다

↓ 내원궁

↓ 지장보살은 부처 입멸 후부터 미륵불이 나타 날때까지의 부처없는 세상에서 육도의 중생을 교화 한다는 대비보살이다 내원궁에있는 지장보살좌상은 고려후기의 불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불상은 사후 세계의 주존인 지장보살을 조각한 것이다 크기나 형태는 대웅전에 모신 보살상과 비슷하지만 조각 수법은 훨씬 사실적이다 균형잡힌 얼굴은 단정 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을주며 어깨의 곡선도 부드럽게 처리되어 유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승형으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지장보살과는 달리 두건을 쓰고있는 점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던 형식이다

◈육도: 지옥도의 단타,아귀도의 보주,축생도의 보인,수라도의 지지,인간도의 제개장,천상도의 일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석가모니의 위촉을받아 부처의 입멸후부터 미륵불이 나타날때까지 육도의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 한다는 보살이다

↓ 내원궁에서 내려오는 가파른 계단

↓ 도솔암 단풍



↓ 장사송은 반송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나이는 약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나무의 명칭은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 불러왔는데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지명인 장사현에서 유래한 것이며 진흥송은 옛날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앞에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진흥굴은 신라24대 왕인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여기서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암석은 유문암질 응회암으로 풍화 작용을 받아 갈라진 틈이(절리) 계속 성장하면서 천정과 옆면의 암석표면이 양파 껍질처럼 층상으로 벗겨지는 박리 작용에의해 형성된 자연 동굴인데 인간의 손길이 가해져 현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있다

↓ 도솔천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의 단풍


↓ 선운사 만세루

선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24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위덕왕24년(577)에 백제의 고승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설이있다 숙종33년(1707)에 쓰여진"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도率山禪雲寺創修勝蹟記)"는 전자의 설을 취하고 있는데 대략 다음과같은 창건 설화를 기록 하고있다 신라의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날밤에 좌변굴(진흥굴)에서 자다가 꿈속에서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를 창건 하였으니 이것이 이절의 시초라고 하였다 이 창건설화는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 했다고하는 사실에따라 형성 되었겠지만 당시에 이지역이 신라땅에 속했을가 하는 문제가있다 또 검단의 창건설을 보면 위덕왕24년은 진흥왕이 왕위에서 물러난지 2년뒤에 해당한다 그런데 검단과 해구에있는 검단리와 관련된 설화가있다 즉 옛날에 검단선사가 바닷가의 사람들에게 소금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기에 해안 사람들은 선운사에 소금을 시납 하였다는 것이다  두설은 모두 설화이기에 어느것이 옳다고 단정 할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된 조선후기의 사료에는 모두 진흥왕이 창건하고 그뒤에 검단선사가 중건한것으로 기록 하고있다 그뒤 공민왕3년(1354)에 효정이 중수하였고 세종3년(1472)부터 10여년동안 극유에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극유는 1472년에 이절에 이르러 뜰에 9층석탑만이 서있는것을 보고 중창을 발원하였다 그는 이듬해2월 제자 종념과함께 상경하여 성종의 작은 아버지 덕원군이쓴 원문을얻어 중창을 시작하였다 그해 여름에 나주보을 정도의 재목 1000여 그루를 3척의 배에싣고 왔으며 1473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와 20여가마를 구웠다 그리하여 1474년에는 2층의 장륙전과 관음전을 짓고 1475년 봄에는 선왕 선가를위한 수륙제를 크게 열었다 1476년에는 천불대 광명전을 조성 하였고 1481년에는 도든 건물이 단청을 마쳤을 뿐만아니라 지장전,동상실,금당,능인전 등을짓고 또한 영산회등 53불회탱을 조성하였다 광해군 즉위년(1608)부터 1609년에 이르는 2년동안 승려 수십명이 선방한 2개소를 먼져 지은뒤 몇년동안에 법당 3칸을 지었다 광해군5(1613)년 봄에 태수 송석조가 일관에게 중창을 부탁하자 일관은 원준과 더불어 수많은집을 돌며 시주를 모았다 그리고 어실을 빙자하여 고창 문수리에서 재목을얻어 먼져 보전5칸을 세운다음 상,하누각과 동,서 양실을 건립하였다 이때의 중창은 6년만인 1619년에 끝을 맺었다 그뒤 숙종33년(1707)에 이르기까지 일관,원준등의 선사들이 서로 계승하여 거듭 건물을 세우고 화상을 조성하는등의 불사를 게속하였다 1698년에 김우황이 쓴"선운사중신기"에는 중수에 참여하고 당시 선운사에 살고있던 승려 260여명을 기록 해두고있다 이기록은 당시의 사찰 규모와 조직등을 알수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707년에는 현익이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를지었다 헌종5년(1839) 비로인해 법당 오른쪽 2칸이 무너져 이에 찬성,의홍,성찬등이 법당과 향운전을 수리하고 정문의 기와를 갈았는데 1840년 가을에 중수를 마쳤다 이때의 중수내역을 기정진이 "무장현선운사대법당사적기"에 기록하여 남겼다 1965년 팔상전을 중수하고 1970년 성보박물관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선운사 사적에는 17세기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의 건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 "전각요사창건연대방명열목"이라는 제목아래 남아있다 그것은 이시기의 선운사의 역사를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영상전,명부전,만세루,산신각,천왕문,대방,요사등이있고 문화재로는 금동보살좌상,금동지장보살좌상,동불암마애불상,영산전 목조 삼존불상,석탑과 부도탑등이있다

↓ 종각

↓ 영산전은 "목조삼존불상"을 모신곳으로 영산이란 영산회상의 준말로서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던 법회의 모임을 뜻한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하여 좌,우에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로 순조21년(1821)에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또한 16나한이 함게 모셔져 있는데부처님 제자중에 아라한과를 얻은 자들로서 응공,응진의 자격을 갖춘 분들이다 진리에 당하여 공양받을 자격이있는 충분한 분들이라는 뜻이다

↓ 영산전에있는 목조 삼존불상으로 가운데 석가모니 불상이고 좌우에는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모셔져있다

↓ 선운사 동백나무 군락지

↓ 대웅전 뒤뜰

↓ 대웅전

↓ 대웅전에 모셔져있는 소조비로자나 삼불좌상이다 가운데 비로자나불상 우측 약사여래상 좌측 아미타여래상 이며 삼불상 뒤로 삼신삼세불 벽화가 그려져있다

↓ 선운사 대웅전은 벽화가 유명한데 이부분은 천정 벽화이다

↓ 대웅전 앞에있는 석탑으로 원래는 9층이었으나 현재는 6층만이 남아있다 고려시대 화강암으로 만든 방형의 축대안에 지대석을 세우고 각층에 사각형의 중석을 올려 6층 옥개석 위에 복발이있고 그위로 팔각의 귀꽃으로 각축된 보개를 얹어 놓았다 사적기에는 조선 성종때 행호 선사가 홀로 우뚝솟은 이 9층석탑을 보고난후 사찰의 중창을 시작 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한다

↓ 관음전

↓ 희귀 식물인 송악은 사계절 늘푸른 잎사귀를 자랑하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넝쿨 식물로 가지에서 공기 뿌리가 나와 나무나 암벽에 붙어 자라고있다 송악은 전북등 남부 지방과 울릉도,인천앞 바다가에 여기저기 서식 하고있으나 선운산의 송악이 전국에서 수령이 제일 오래되고 크기가 제일커서 노거수로 천년 기념물로 지정 되었다 10월경에 녹황색의 작은 꽃들이 몇개씩 모여 산형 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열매는 둥글고 이듬해 5월에 검게 익으며 상춘등 이라하고 잎사귀와 줄기 열매까지 약용으로 사용한다 안면 신경마비,관절념,황달,안질등에 효능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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