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천태산(영동)

은 척 2017. 11. 21. 12:11

천태산(715m)

일시: 2017.11.19일             08:00분 덕천동 부민병원 출발               차량이동시간: 2시간40분 소요

이동거리: 7km                  산행시간: 3시간50분(11:50분 출발-14:40분 하산)

코스: 주차장-할멈삼신바위-은행나무-영국사-암릉구간-천태산삼거리-천태산(빽)-천태산삼거리-684봉이정표-헬기장-C코스하산갈림길-암릉-전망바위-남고개-403봉-안부삼거리-옥쇄봉-구수봉-갈림길-이동통신탑-주차장

↓ 천태산 주차장

↓ 천태산 안내석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등산기록

↓ 쌓아 놓은듯한 암벽

↓ 왼쪽길은 망탑봉으로 올라가서 진주폭포로 이어져 남고개나 주차장으로 하산할수 있으며 오른쪽길은 영국사와 A코스로 오르는 등로이다

↓ 삼신 할멈바위는 바위가 가로로 층층이 쌓여있는 모습이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주름을 연상 시키는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삼신 할멈바위는 상어 흔들바위와 함께 천태산을 대표하는 바위중 하나이다 층층이 쌓인 바위틈에 작은돌을 던져서 떨어지지 않으면 삼신할멈이 자식을 점지해 준다는 소문이 있으며 지금 까지도 그덕에 아이를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한다

↓ 천태산 삼단폭포는 폭포수가 3단계를 거쳐 흘러 내리고있다 예전에는 용추 폭포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기암 절벽과 송림이 멋지게 어울려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감동과 경이로움을 선사 하고있다

↓ 영국사 일주문

↓ 영국사 은행나무는 높이가 31m 가슴높이의 둘레는 11m이며 나이는 약1000년 정도로 추정된다 가지는 2m높이에서 갈라졌으며 동서 방향으로25m 남북 방향으로 22m 정도 퍼져있다 서쪽 가지중 하나는 밑으로 자라서 끝이 땅에닿아 여기서 자라난 새로운 나뭇가지가 높이 5m 이상이나되고 가슴 높이의 지름이 20㎝가 넘는다 이 은행나무는 국가에 큰 어려움이 있을때 마다 소리를 내어 운다고하며 가을에는 이나무와 주변의 경관이 하나로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 만세루

↓ 대웅전은 주존불로 석가여래좌상을 모신 불전이다 정면3칸,옆면2칸의 다포식 맞배 지붕으로 현재의 건물은 조선중기 이후에 지었으며 고종30년(1893)과 1934년에 중수 하였으나 1980년에 해체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절은 원각국사가 신라 법흥왕14년(527)또는 문무왕8년(668)에 창건 하였다고 한다 고려 문종때 대각국사가 국청사라 하였으나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왔을때 국태민안을 기원 하였다하여 영국사라 부르게 되었으며 경내에는 보물제534호로 지정된 원각국사비가 있다

↓ 삼층석탑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일반형 석탑으로서 2중 기단위에 3층으로 만든 몸돌을 세운것이 특징이다 원래 옛절터에 넘어져 있던것을 1942년 주봉 조사가 이곳으로 옮겨와 복원 하였고 대웅전 건물이 향하고있는 동쪽을 바라보고있다 이탑을 옮겨 세울때 2중기단의 위층과 아래층이 바뀌었던 것을 2003년 문화재 보수정비 사업때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 하였다 신라후기 9세기 말경에 건립된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재료는 화강암이다 상륜부의 다른 부재들은 일부가 없거나 훼손되어 사찰내에 보관중이며 현존하는 통일 신라후기 탑중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있다

↓ 극락보전

↓ 요사채

↓ 영국사로 들어가기전 직선 도로가 천태산으로 가는 등로이다

↓ 등산로 입구

↓ 첫번째 밧줄을 타고 올라오면 만나는 조망이다

↓ 가운데 동골산과 우측으로 구수봉과 옥쇄봉이다



↓ 암릉구간이 길다



↓ 2차 암릉 구간을 올라오면 다시 만나는 암릉으로 밧줄을 타야하며 옆으로 우회 등로가있다

↓ 우회등로 안내문

↓ 밧줄구간에 사람들이 너무많아 오래 기다려야 하므로 우측으로 우회 하였다


↓ 천태산 삼거리 이정표 (이곳에서 천태산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 와야한다)

↓ 천태산 정상 이정표

↓ 천태산은 고려시대 천태종의 본산 이었기 때문에 산이름도 천태가된 영동의 명산으로"충북의설악"이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빼어나며 뛰어난 자연경관과 정리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이름난 명소가 산재해있어 등산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무엇보다 여름철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기암과 각종 수목의 푸르름과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천년 사찰인 영국사(寧國寺)가 자리잡고 있어 천년 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배여있다 주차장으로 부터 약1km 정도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영국사라는 오래된 절이 나오는데 이 절에는 고려조 공민왕의 발자취가 서리어있다 서기1361년(공민왕10년)11월 원나라의 한산동을 두목으로 하여 일어났던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하기위해 공민왕은 노국 공주와 대신들을 데리고 피난의 길을 떠났다 남으로 길을 재촉하던 공민왕은 영동 양산면 지금의 누교리에 머물게 되었는데 영국사의 그당시 이름은 국청사 이었다 왕이 부처님앞에 나아가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평안을 빌려고 하였으나 며칠 전부터 내린 폭우로 도무지 내를 건너 갈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개울건너 천태산 쪽에서 종소리가 울려오자 공민왕은 깜짝놀라 좌,우를 둘러 보면서"이부근에 절이 있는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종소리가 아름다운 절인줄은 몰랐구나"라고 하자 왕비와 왕자 그리고 대신들은 하나같이 공민왕의 눈치만을 살피다가 대신 한사람이 설명하기를"저절은 일찍이 신라때 원각국사께서 세운 절로서 처음에는 만월사라 하였다가 문종대왕 당시 대각국사가 주지로 온뒤로 국청사라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옵니다"하고 아뢰자 공민왕은 눈이 번쩍 뛰었다 대각국사 의천은 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천태종을 일으킨 분이 아닌가 하면서 의천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저 국청사에 올라 국태민안을 빌어 보고싶다 고하자 공민왕의 뜻을 알아채린 대신들은 산에올라 칡넝쿨을 걷어오라 일렀다 그들은 수행원과 인근 마을 주민들이 걷어온 칡넝쿨을 새끼줄처럼 꼬아서 구름다리를 만들어 왕비,왕자 그리고 대신들과 함께 완성된 다리를 밝고 건너 국청사 부처님앞에 나아가 국태민안을 빌었다 그래서 국청사는 공민왕이 다녀간뒤 왕이 나라안  백성들의 평안함을 빌었다하여 영국사로 고쳐 부르기 시작 하였으며 공민왕이 칡넝쿨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간 마을을 누교리(樓橋里)라 지어 부르게 되었다


↓ 천태산 정상뒷편 돌무덤

↓ 684봉 이정표(여기서 내려가는 등로는 경사가 가파르다)

↓ 헬기장

↓ C코스 하산로 삼거리(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영국사로 가는길이다 )

↓ 능선 전망대에서




↓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것은 덕유산 능선이다  

↓ 조망이 좋은 암릉에서







↓ 전망바위


↓ 전망 바위에서


↓ 남고개 100여m 전에있는 이정표(여기서 남고개 반대 방향으로 돌아 왼쪽으로 오르면 남문유적지를 지나 403봉과 안부 삼거리 이정표 있는곳으로 갈수있는데 등로가 희미하여 남고개에서 403봉으로 가기로 하였다)

↓ 남고개 이정표

↓ 남고개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능선을 올라 한참을 가면 403봉 바로 밑에있는 바위굴을 지나 안부에 이르면 옥쇄봉을 알리는 이정표가있다)

↓ 바위굴 통로

↓ 안부 삼거리 이정표 (여기서 옥쇄봉 방향으로 진행)

↓ 능선에서 뒤돌아본 천태산

↓ 아무런 표식이없는 옥쇄봉 정상

↓ 옥쇄봉에서 바라본 조망

↓ 가야할 구수봉

↓ 뒤돌아본 천태산

↓ 뒤돌아본 옥쇄봉

↓ 구수봉 정상 (여기서 300여m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천태산 주차장은 왼쪽으로 내려 가야한다 오른쪽 길은 새터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 거의다 내려오면 만나는 통신탑


↓ 일화식당 앞으로 내려오면 바로 천태산 주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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