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팔영산(고흥)

은 척 2017. 12. 15. 17:32

팔영산(609m)

일시: 2017.12.10일           07:30분 덕천동 부민병원 출발           차량이동시간: 3시간소요

이동거리: 7.6km              산행시간: 4시간30분(10:40분 출발-15:20분 하산)

코스: 능가사주차장-팔영산장-흔들바위-1~8봉-자연휴양림갈림길-깃대봉(빽)-자연휴양림갈림길-자연휴양림-임도-매표소주차장

↓ 능가사 입구

↓ 능가사 천왕문

↓ 사천왕상은 원래 인도 재래의 방위신인데 불교에 흡수된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천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때는 대략 6세기 말이나 7세기초로 보고있다 감은사지 사적기에 사천왕상이 조각된것을 보면 7세기말에 사천왕상이 많이 만들어 졌음을 알수있다 8세기가 되면 사천왕상은 인왕상과함께 만들어 지다가 9세기 이후부터는 주로 석탑이나 부도의 기단부에 활발하게 조각되었다 1995년 천왕문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 되었는데 초장 연대는 조선 현종7년(1666)이며 중장은 조선 순조24년(1824) 3장은 일제 강점기인 1913년으로 세번에 걸쳐 보수 되었음을 알수있다 또 이를 뒷받침 해주는 자료로 조선 숙종16년(1690)에 세운 능가사 사적비에 천왕문과 사천왕상에 대한 시주자 명단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천왕상이 상량문에서 밝혀주고 있드시 초장 연대가 1666년 이므로 사천왕상 역시 이때 동시에 조성된것으로 보인다

↓ 능가사 천왕문 내부에 안치되어있는 4구의 사천왕상은 좌,우 2구씩 목책안에 안치 되어있는데 천왕문 입구 왼쪽 앞쪽에 북방 다문천왕이,뒤쪽에 서방 광목천왕이 배치되고 오른쪽 앞쪽에 동방지국 천왕이 뒤쪽에 남방 증장천왕이 배치되어있다 이 사천왕상중 동방지국 천왕상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능가사 사적비 등에 기록되어 있다 천왕문은 정면3칸 측면1칸이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제작 되었으며 서있는 입상이 아니라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의 좌상으로 높이는 450㎝이다 머리에는 화려한 연화문이 그려진 원통형의 보관을쓰고 머리 양옆으로 보관에달린 끈이 휘날린다 얼굴은 불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험상궂은 표정을 하면서도 눈썹과 수염 등에서 부드럽고 해학적인 분위기를 느낄수있다 천왕상은 갑옷을 입은 무장형으로 어깨위로 한가닥의 천의가 휘날리고있다 천왕이 든 지물은 장수의 모습에 따라 비파,용과보주,당,탑등의 다른 지물을 가지고있다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등산기록

↓ 능가사 대웅전은 절에서 가장 중심이되는 건물로 석가모니 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능가사는 팔영산 아래에있는 평지 사찰로 일명 보현사 라고도한다 임진왜란때 불에탔던 것을 조선 인조22년(1644)에 벽천대사가 다시지어 능가사라 하였다 이 건물의 규모는 정면5칸,측면 3칸이다 지붕은 옆에서볼때 여덟팔(八)자 모양인 팔작 지붕이다 기둥은 약간 거칠게 다듬은 배흘림(중간이굵고 위 아래로 가면서 가늘게된 기둥)형태이다 특이한것은 건물 방향이 입구에 맞춰 북향으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의 건물 이지만 규모가크고 건축양식이 우수하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지금의 모습은 최근에 해체 보수한 것이다

↓ 대웅전의 삼존불은 본존불인 석가모니 불과 좌,우 협시는 입상의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이며 본존불 좌우에 연등불과 미륵불이 모셔져있다


↓ 대웅전의 옆모습

↓ 능가사 범종은 1698년 주조된 것으로 종을치면  점암면 일대가 울려퍼질 정도로 소리가 매우크다 일본인들이 탐을내어 범종을 헌병대에 가지고가서 종을치자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있다 능가사 범종은 조선시대의 동종으로 조선 숙종24년(1698)에 만들어진 종으로 보물1557호로 지정 되어있다 현재의 종각은 새로지은 것으로 종각의 형태가 2층 누각으로 되어있다

↓ 능가사 경내


↓ 응진전은 나한전 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시고 좌,우에 부처님의 제자들인 16나한(아라한의 줄인말)을 봉안한 법당이다

   즉심시불(卽心是拂)이란 인간은 본래부터 마음에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이다

↓ 응진전의 석가모니 삼존불상

↓ 능가사 사적비는 절의 내력을 적어놓은 비로 능가사 사적비에 따르면 신라 눌지왕 원년인 417년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보현사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처음 절을 세웠다고한다 이후 임진 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린것을 인조22년(1644) 정현대사(벽천)가 여름에 수행 하다가 꿈에 산의 남쪽에 옛 절터를 발견하여 전각,요사채,불상,탱화,종각,목어각 등 불사를 하면서 능가사로 다시 일으켜 세워 오늘에 이르고있다 사적비는 방형(사각형)에 가까운 자연석 좌대위에 귀부를 올리고 그 위로 비신과 이수(비석의지붕)를 갖춘 완전한 형태의 비이다 비문에 따르면 능가사는 원래 보현사란 이름으로 처음 지어 졌으나 지리지 등에는 별개의 사찰로 각각 기록 되고있다

↓ 뒤에서본 응진전

↓ 뒤에서본 대웅전

↓ 요사채

↓ 부도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이다 이 부도는 조선시대 후기 승려로 사제간인 추계당과 사영당(泗影堂) 부도이며 원래의 위치로 알려져왔다 추계당 부도는 석종형으로 기단부는 방형의 하대석위로 8각의 복련을 새겼다 16엽의 연화문으로 화려한 문양이 없어 오히려 소박한 편이다 그위에 원형인 홈을파고 탑신부를 얹었다 탑신부 하대에는 돌아가면서 물고기,게 등이 조각 되어있는데 북쪽인 두개의 유곽사이에 방형의 기패 모양을 새기고 그안에 추계당 이라는 당호를 새겼다 사영당 부도는 석종형과 8각 원당형의 양식에서 벗어난 이형 부도이다 일반적인 부도와달리 사영당 부도는 복련과 방형의 하대석이 한돌로 되면서 그위에 바로 중석이 이어지고 앙련이 생략 되어있다 하대석 귀퉁이에 각기 사방을 향하고있는 용두를 조각하여 그위로는 한줄로 연결된 복련이 이어지고 있는데 각면이 두엽식 모두 8엽의 연화문이 장식 되어있다 북쪽에는 직사각형의 위패모양을 새기고 그안에 사영당 이라는 당호를 새겼다 이들 부도의 조성 연대는 추계당 부도는 17세기 중반경 사영당은 17세기 후반으로 보인다

↓ 등산로입구



↓ 흔들바위

↓ 팔영산  제1봉에서





↓ 뒤돌아본 제1봉



↓ 제2봉에서


↓ 제3봉에서






↓ 제4봉에서


↓ 제5봉에서


↓ 우측 신선봉과 다도해 풍경



↓ 제6봉에서




↓ 안부 갈림길 이정표


↓ 통천문

↓ 제7봉에서

↓ 제8봉에서






↓ 깃대봉 가기전 헬기장

↓ 자연휴양림 갈림길 이정표

↓ 팔영산은 소백산맥이 서쪽으로 힘에 지친듯 기울다가 동남으로 고흥 반도를 바라보며 점암면 성기리,강산리,영남면 양사리 등에걸쳐 우뚝 솟아있는 산으로 진산이라 하여 옛 문헌에 보면 이산의 이름은 팔영산 이외에 팔전산,팔령산,팔점산 등으로 불리웠으며 산위의 정상에 팔봉이 있는데 유영,성주,생황,사자,오로,두류,칠성,적취봉 이라한다 이 팔봉의 그림자가 멀리 한양에까지 드리워져서 팔영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금닭이 울고 날이 밝아 오면서 붉은 햇빛이 바다위로 떠오르면 팔봉은 마치 창파에 떨어진 인판(印版:인쇄판)과 같다하여 그림자영(影)자를 붙였다하고 또한 옛날 중국 위나라 태화연간(227~231)에 그림자가 멀리 위주의 세수 대야에 비추어 왕이 몸소 이산을 찾아와 그림자 영자를 붙여 주었다고 한다






↓ 지나온 팔영산 봉우리들


↓ 팔영산 자연 휴양림


하산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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