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행기

오대산(평창)

은 척 2018. 1. 10. 15:11

오대산(1563m)

일시: 2018.01.07일             06:20분 덕천동 부민병원 출발             차량이동시간: 4시간50분 소요

이동거리: 11.6km              산행시간: 4시간(11:10분 출발-15:10분 하산)

코스: 주차장-상원사-중대사자암-적멸보궁-비로봉-1539봉-헬기장-상왕봉-두로봉갈림길-북대미륵암갈림길-임도-주차장

↓ 상원사 주차장

↓ 상원사 표지석

↓관대걸이 이곳은 조선초 세조대왕이 목욕할때 의관을 걸어둔 곳이라하여  관대걸이라 하며 주변 나무는 소나무과 낙엽침엽 교목으로 일명"잎갈나무"라고 부르며 백두산 중턱에 주로 서식하고 있는 수목으로서 수령을 약100년으로 보고있다 여기서부터 약21km 서쪽 서대장령 밑에는 우통수라는 샘이있는데 물의 비중과 맛이 특이하여 중국 양자강의 중냉과 같다고하여 한강의 시원 이라고한다

↓ 등산지도


↓ 등산 트랙지도


↓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세웠으며 성덕왕4년(705)에 중창 하였으나 1946년에 불타 1947년에 새로 지은 절이다 이 절에는 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든 높이1.67m 지름91㎝의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제36호)이 보존 되어있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또한 세조가 직접 보았다고 하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조각한 문수 동자상과 상원사를 중창 하기위해 세조가 쓴 친필 어첩인 중창권선문이 있다 상원사 입구에는 관대걸이 라는 곳이있는데 이곳역시 오대산과 얽힌 세조의 전설중의 하나이다 오대산에있는 상원사의 선원 또는 청량선원 이라고도 하며 선원안에는 석가여래좌상과 문수보살상 국보제221호로 지정된 목각 문수동자상 3구의 소형 동자상,서대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목각의 대세지보살상이 함께 봉안 되어있다 상원사는 한국 전쟁당시 군사 작전으로 오대산의 모든 절을 불태웠을 때도 상원사는 문짝밖에 타지 않았다 30년 동안이나 상원사 밖으로는 한발짝도 나가지않고 참선한 것으로 이름높은 방한암 선사가 절과 운명을 같이하려는 각오로 버텼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문짝만 불태웠다고 한다 방한암 선사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신화처럼 전해지는데 이곳에서 불법을 닦는 이들은 선사가 고요히 앉은채로 입적한 사진을 돌려보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오대산 신앙의 중심이되는 중대 사자암에 가면 선사가 이곳으로 올때 짚고와서 꽂아놓은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해마다 잎을 티운다는 단풍 나무를 볼수있다

↓ 상원사 문수전과 오층보탑이다

↓ 상원사 문수전에 세조와 깊은 인연이 있는 문수동자상(왼족,국보제221호)이다

   문수 동자상은 조선 단종을 폐위한 세조가 즉위한지 10년째 되던해인 1464년에 등창(부스럼)을 얻게되자 신미 대사의 권유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대산에 행차하게 되었다 상원사에 도착한 다음날 계곡물(오대천)에 몸을 담그던중 지나가던 동자에게 등을 밀어 줄것을 부탁 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자가 등을밀어 몸이 날아갈듯이 가벼워지자 기뻐하며 임금의 몸을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동자가 미소를 지으며 대왕도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말라며 홀연히 사라졌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동자승은 사라지고 어느새 자신의 병이 씻은듯이 나은것을 알았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등창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기쁘하며 궁에 돌아와 화공을 불러 만났던 동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으나 제대로 그리는 화공들이 없었다 그러던중 하루는 누더기를 걸친 노 스님이와서 자신이 그려 보겠다고 하여 세조가 그모습을 설명하자 노 스님은 자신이 알아서 그리겠다고 하며 설명도 듣지않고 그려온 동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똑같아 세조는 놀라 스님이 오신곳을 묻자 노 스님은 영산 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가버렸다고 한다 즉 세조는 동자와 노 스님으로 화현하여 나타난 문수보살님을 두번이나 친견한 것이다 이후 의숙 공주와 효녕대군의 발원으로 세조의 수복을 빌기위해 문수동자상이 조성되어 1466년 상원사에 모셔졌다 이렇듯 문수보살 감응 신화는 조선시대 까지 전수된 문수 정토의 신앙과 문수 화현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고양이 석상은 조선 세조와 인연이있는 석상으로 세조가 상원사를 참배하여 법당에 들어 가려하자 고양이가 나타나 옷소매를 물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주위를 샅샅이 뒤진끝에 불상을 모신 탁자밑에서 자객을 찾아내 목숨을 건진 세조는 고양이의 은혜에 보답 하기위해 상원사 고양이를 잘 기르라는 뜻에서 묘전을 하사 하였다 세조는 서울 가까이에도 여러곳에 묘전을 마련하여 고양이를 키웠는데 봉은사에도 묘전 50경을 내려 고양이를 키우는 비용에 쓰게하였다 근래에는 고양이 석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하여 많은 분들이 믿음으로 기도하고 오대 광명을 받아가고 있다

↓ 상원사 동종



↓ 중대 사자암 입구

↓ 계단식으로 지으진 중대 사자암의 특이한 건물 형태이다


↓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 비로자나불(毘盧자那佛)은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비추어 가득 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을 이르는 말이다 비로자나불은 대승불교(화엄경)에서 시방 제불을 전체적으로 포괄하는 법신불로 등장한다 밀교에서는 아득한 옛날에 부처가 되었다고하는 5선정불의 중앙에 위치하는 부처로 보는것이 보통이지만 비로자나불 만 따로 모시기도한다 회화에서 비로자나불은 흰색으로 채색되고 손은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있다 용 또는 사자를타고 다니고 수레바퀴를 상징으로 하며 5온 중에서는 색을,소리로는"아"또는"옴"이라는 음을, 우주의 구성 요소로서는 공간을, 감각으로는 청각을, 감각 기관으로는 귀를 담당하고 있으며 인체에서의 위치는 머리이다 비로자나불은 동 아시아의 유가사들이 널리 모시고있다 전설에 따르면 비로자나불은 초인적 존재인 금강 살타에게 요가의 가르침을 전하였으며 금강지가 719년 중국에 그 가르침을 전했다고한다 이곳 중대 사자암 비로전에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 부처님을 모셨으며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시고있다

↓ 중대 사자암은 조선 태종1400년 11월 중창 되었으며 1466년(세조12) 10월초5일 상원사 중수 낙성때 세조가 보궁에 올라 예배하고 공양과 보시를 하였다고 세조 실록에 기록 되어있다 이후 왕실의 내원당으로 명종대에도 대비는 승영(僧營)사찰로 보호되었다 1644년부터 1646년 사이에 중수 되었으며 이후에는 왕실 보호로 사세를 유지하고 건물을 보수하면서 1878년(고종15) 개건되어 요사채로 사용되던 향각이 낡아1999년 퇴우 정념스님이 향 사루이제불 보살님께발원하고 오대 상징의 5층으로 향각을 신축하여 2006년 8월에 비로전,중향각(총4층요사채) 우향각(사무실)좌향각(접견실 및 승방)이 완공되고 건축 불사가 마무리되었다

↓ 중대 사자암 종무소

↓ 내려다본 중대 사자암


↓ 적멸보궁

↓ 적멸보궁은 1466년에 창건된 속건물로 1878년 풍우와 추위를 막는 방풍,방한 구조물로 증건된 겉 건물에 씌워진채 보존 되다가 2000년 보수 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면적13,5평으로 배흘림 기둥 연화두식 창방 뺄목등이 15세기 창건시의 고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부가된 퇴칸,2익공 장엄불단 및 장엄구 등은 19세기의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고있다

↓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은 신라시대 자장스님(590-658) 께서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 보살님으로부터 불사리를 받아 643년 귀국하였다 이후 왕에게 건의하여 황룡사 9층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이어 정공 사리를 오대산 지로봉에 모시었으며 양산 통도사,영월 법흥사,태백 정암사,설악산 봉정암에 사리탑을 건립 봉안 하였다 사리는 범어(梵語)를 번역한 것으로 원래 몸을 의미하는데 유골,신골의 뜻을지니며 소리 나는대로사리(舍利)라 칭하게 되었다 사리는 六바라밀을 닦은 공덕으로 생기거나 계정혜 수행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가는 복전으로 신앙의 대상이다 현재 보궁뒤편 봉분에 세워져있는 비석은 제작 시기를 알수 없으나 땅속에 뭍혀 있던것을 한암스님(1876-1951)께서 찾아내어 다시 세워놓았다 불사리탑 앞에 불상을 모시지 않은 배전(拜殿)이 있으며 중대 적멸보궁의 사리탑은 국내 유일의 봉분 토탑이다

자장율사는 신라 선덕왕14년(645)에 당나라에서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골과 사리를 오대산 성지에 봉안하고 적멸보궁과 마애보탑을 세워서 한국 불교의 본거지로 삼고 곧이어 국왕에게 황룡사에다 9층 석탑을 세워 신라 통일의 의지를 국내외에 천명하도록 건의하여 2년후에 완성함과 동시에 대국통에 추대되어 승려들의 기강을 세우고 강원도에 상주하며 전국 각지에 사찰을 건설하여 국민교화에 힘써 불국정토 건설에 정진 하다가 신라 통일전에 입적한 암하고불 의 시조이다

↓ 비로봉 정상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은 비로봉(1563m),동대산,두로봉,상왕봉,호령봉 등 다섯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동쪽으로 따로떨어져 나온 노인봉 아래로는 천하의 절경 소금강이 자라잡고있다 오대산 이라는 명칭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과 산의 형세가 흡사하여 오대산 이라 불렀다고 하며 소금강은 노인봉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기암괴석 들의 모습이 금강산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대산은 우리나라의 가장크고 긴 산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위치 하고있다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1000m내외의 봉우리가 다수 자리하고있는 고지대이며 내륙성 기후 특성을 보이는 월정사 지역과 동해와 인접한 해안기후 특성을 보이는 소금강 지역으로 구분 되고있다 비로봉 이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데 오대산 비로봉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한 불교 신앙이 자연을 숭배하는 고유 신앙으로 녹아든 대표적인 예라고 할수있다 원래는 풍로산 또는 지로산이라 불리던 이곳 오대산의 주봉이 비로봉으로 바뀐 이유도 이때문이다

↓ 오대산 정상에서








↓ 1539봉 에서



↓ 헬기장

↓ 괴이한 나무들


↓ 주목은 주목과에 속하는 상록침엽 교목으로 한국,중국,일본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적백송,자삼,수송,적목,경복,화솔나무 등 여러 명칭이 있으나 줄기의 색깔이 붉어서 붉은 나무라는 의미의 侏 木 이다 주목은 강인한 생명력과 죽어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특징이있어"살아천년 죽어천년"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평양에서 발굴된 2000년전 낙랑 고분관의 재질은 주목 이었으며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1500년전 나무 베개의 재질도 주목이었다 국내 공인된 최고령 주목 나무는 강원도 정선군 두위봉에서 자라고있는 천년기념물 제433호로 지정된 주목으로 나이가 1400살이나된다 주목은 해발1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란다


↓ 괴이한 나무들이다


↓ 상왕봉 이정표

↓ 상왕봉에서







↓ 주문진 앞 동해바다


↓ 두로령 갈림길 이정표

↓ 북대암 갈림길 이정표

↓ 5km정도 걸어 내려가야할 임도


↓ 상원사 주차장으로 하산 원점회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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