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카프리섬(이탈리아)

은 척 2019. 4. 4. 11:02

서유럽 여행 마지막날이다 (2019.03.24일)

↓ 카프리섬 모습




↓ 카프리섬 지도



↓ 카프리섬  마리나 그란데 항구(마을넘어 남쪽에는 마리나 피콜라 항구가있다)

↓ 카프리섬 마을 해변가



↓ 이곳에서 맥주 한잔하였다





↓ 카프리섬에 도착하여 유람선으로 카프리섬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 유람선에서 바라본 조망









↓ 암벽속에 동굴

















카프리섬은 나폴리만의 남쪽입구와 소렌토 반도를 마주보고 있는데 선사 시대에는 이 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섬은 석회암으로 이루어 졌으며 최고봉은 서부에솟은 솔라로 산으로 높이가 589m에 이른다 가파른 절벽들이 계속되는 해안의 두만입부 즉 방파제로 보호되는 북쪽 해안의 마리나 그란데와 북풍이 특히 강하게불때 사용되는 남쪽의 마리나 피콜리가 정박지로 이용된다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이섬은 후에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로마제국 초기에는 황제들의 휴양지(카프레아이)로 이용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거주했으며 티베리우스 황제는 여러채의 별장을 지었다 그 가운데 나폴리가 내려다 보이는 섬의 북동부 끝머리에 지어진 이오비스 별장이 발견되었다 10세기에 주민들은 해적들의 약탈을 피해 해변가 정착지를 버리고 해안보다 높은지대 지금의 카프리시와 아나카프리(서쪽)가 위치한 곳으로 옮겨갔다 19세기에 카프리와 아나카프리 사이를 연결하는 마차길이 생기기 전까지 아나카프리는 스칼라페니차(페니키아의 계단)로 불리는 800개의 계단을 통해서만 왕래가 가능했다 중세때 카프리섬은 몬테 카시노대 수도원에 귀속되었고 아말피 공화국의 일부를 이루다가 나폴리 왕국에 넘어갔다 나폴레옹 전쟁중 프랑스와 영국에 번갈아 점령되었으며 그후 1813년에 양시칠리아 왕국에 반환되었다 카프리의 암석 해안에있는 많은 동굴중 한곳에서 석기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동굴들 가운데 가장유명한 그로타 아추라(푸른동굴)는 1826년에 재 발견되었고 배로만 접근할수있다 입구를 거의 채운물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독특한 푸른빛을 발하는데서 이동굴의 이름이 기원한다 중세의 바르바로사 성과 카스틸리오네 성의 유적이 있으며 이섬의 수호성인의 이름을딴 산코스탄초 교회가 가장 오래된 교회(10-11세기)이다 스웨덴의작가 악셀문테는 티베리아누스 황제의 별장이있던 자리에 산미켈레 별장을 세웠다 19세기 후반부터 카프리는 남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특히 아름다운 경치와 온화한 기후로 유명해졌다 물이 부족하지만 기후가 온화하여 식물이 잘자라는 곳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다양한 식물상이 분포하며 수많은 종류의 철새도래지 이기도하다 이섬의 이름은 카프라(염소) 나카프로서(멧돼지) 두 단어중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높다 아름다운 해수욕장들과 수많은 호텔및 별장들이 있으며 나폴리와 소렌토로 이어지는 증기선과 수중 익선들이 자주 운행된다 관광업 이외의 산업으로는 농업(포도,올리브,감귤류)과 어업이 이루어진다 1978년 본토와 연결된 해저수로가 완공되어 담수가 공급되면서 각종 산업부문이 활성화 되고있다















↓ 이섬에서 유명한 푸른동굴로 동굴입구에 물이차면 푸른빛이 반사된다고한다








↓ 온천이 있는곳이다


 유명 인사들이 이곳을 다녀간 곳이며 박지성도 이곳에 허니문을 온곳이다



↓ 마리나 그란데 항구에서


↓ 나폴리까지 타고갈 여객선

↓ 나폴리 베베렐로 항구

↓ 나폴리는 세계3대 미항중의 하나이며 이탈리아 내에서도 3대 주요도시로 남부지방의 중심이되는 도시이다 나폴리는 그리스 정복자들이 기원전 5-6세기 사이에 건설한 도시로 나폴리는 네아폴리스 즉"새로운도시"라는뜻이다 풀리아 지역의 타란토 나칼라브리아 지역 그리고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와 연원을 같이하는 그리스에 기원을둔 도시이다 이탈리아는 1870년대에 통일이 되기전까지 각각의 도시들로 이루어진 국가였는데 나폴리는 기원전 326년에 로마로 편입되었고 AD90년에 자치도시가 되었다 나폴리는 스페인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혹은 프랑스에서도 로마로 들어가기위해 진을 칠수있는 가장 적절한 항구였으며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늘 이민족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서로마 제국의 몰락후 고트족,비잔턴,노르만족들이 서로 얽히면서 이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1282년 나폴리 왕국이 성립 되기도 하였지만 14세기 경에는 영국계의 앙주가문에 의해 번성을 누리다가 1441년 결국 스페인의 지배에 들어가 시칠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16-17세기에 에스파냐로 들어갔다가 1734년에 에스파냐계통의 왕이 배출되어 독립하였다 19세기초에는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다 또다시 1860년 가리발디에 의해 독립이되고 투표를통해 사르데냐 왕국에 병합되어 현대 이탈리아의 나폴리가 되었다 나폴리는 이런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가진 도시이다보니 나폴리 사람들의 생존력은 대단히 뛰어나다 한예로 마피아의 한지류인 카모라가 아직도 이지역에서 번성하며 뿌리를 깊게내리고 있다 옛 네아폴리스가 자리잡았던 곳에는 대저택,성,교회당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도시의 많은곳에 걸쳐 인공 지하 동굴이있다 그 이름을딴 거리에 위치하고있는 두오모성당(1294-1323)은 지진으로 크게 부서진후 대폭 보수되었다 다른 사적지로 카포디

몬테 대저택과 1279-1282년에 피아차 델무니치피오 서쪽에 세워져 일명 마스키오 안조이노(앙주요새)라고도 알려졌고 현재 시청이 들어선 카스텔누오보,상점과 사무실이 들어있는 십자모양의 갈레리아 움베르토2세거리,성토마스아퀴나스가 공부하였고 후세를 가르쳤던 도미니쿠스회 수도원 등이있다 나폴리는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지역을 연결하는 철도의 중요한 연결 지점이다 현재의 항만시설은 제2차 세계대전후 재건 되었지만 여객 항으로서 차지하던 나폴리의 중요성은 감소되었다


◎ 마피아는 중세후기 시칠리아섬을 정복했던 여러 외국인들의 지배를 타도하기위해 만들어진 비밀조직에서 시작 되었다는 설이있으나 사실은 수세기동안 시칠리아가 무법 상태에 있을때 강도로부터 토지를 보호 하기위해 부재 지주들이 만든 소규모 사병조직"마피아"에서 비롯되었다 18-19세기에 일부 사병조직이 자발적으로 세력을키우고 지주의 곡식을 보호하는 대가로 지주로부터 많은돈을 빼앗는등 시칠리아의 유일한 법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 나폴리 누오보성


↓ 나폴리에서 로마로 가는 버스안에서 본 풍경들




↓ 마지막날 귀국 하기위해 온 로마 공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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