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수비오 화산폭발로 묻혀 버렸던 이탈리아 고대도시 유적지 폼페이를 찾아갔다(2019.03.24일)
↓ 로마에서 버스를타고 폼페이를 찾아가는 창밖의 풍경이다
↓ 폼페이 유적지
폼페이는 BC6세기경에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BC80년부터 본격적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이지역은 폼페이 뿐만아니라 인근도시 에르클라네움이 발전하기 시작해서 폼페이 지역의 인구는 약3만명에 육박했다 화산폭발의 징조는 이미 62년에 일어났고 인근 도시인 에르클라네움은 이미 페허가 되었지만 당시 폼페이는 건재하였다 폼페이는 로마 지도자들이 휴양지나 별장들을 많이 지었던 곳으로 사시사철 해가 뜨기때문에 건강에 좋을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화산의 지반열이 있어 그다지 춥지가 않았다 폼페이는 79년8월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인해 15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7m이상의 화산재에 파묻혀 사망하였다 전설로 내려오던 폼페이 유적에대한 본격적인 발굴작업은 1748년도에 이루어졌고 현재 발굴작업은 거의 완료된 상태이지만 곳곳은 아직도 작업중에있다 폼페이에서는 광장,공중목욕탕,프레스코가 그려진집들,대성당(법정), 원형극장,베티의의사당,작은매음굴 그리고 도시의 대로를 볼수있다 500m 아래에는 전형적인 로마 가옥들이 보존 되어있는 에르클라네움이 있다 폼페이는 상당히 넓으며 60여곳의 볼거리가있다 폼페이는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지정된 세계문화 유산이자 이탈리아 내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곳이다 폼페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고향인 폼페이에 대해서 말을하지 않았다 저주받은 도시출신 이라는것을 알리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발굴작업이 시작되자 이 발굴작업의 여파가 굉장해서 전유럽에 고대 그리스풍의 유행이 새로 생기기 시작했을 정도이며 유럽의 부호들은 너도나도 이 발굴작업에 뛰어들었다 서유럽에서 유물,유적은 단순한 예술품 이
외에 엄청난 부를안겨 줄수있는 또다른 노다지였기 때문이다
↓ 이집은 그당시 매춘 골목으로 알려져있다
↓ 집안에 붙어있는 그림들
↓ 방크기로 보아서는 그당시 폼페이 사람들의 체구가 작은것같다
↓ 공동수도를 사용했던 곳이라고한다
↓ 빵을굽던 화덕
↓ 그당시의 멧돌
↓ 화산재에 묻혀있던 유물들과 사람이다
↓ 낮은지역의 가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