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를타고 로마시내 관광: 키르쿠스막시무스-진실의입-포로로마노-캄피돌리오언덕-조국의제단-베네치아광장-트레비분수-스페인광장-콜로세움
↓ 팔라티노 언덕에있는 옛황궁터를 멀리서 바라보고있다
↓ 로마시내 관광을한 코스 지도이다
↓ 로마는 한마디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매력을 소유한 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 이라고 할수있는 로마는 옛유적을 그대로 보전한채 현대문명과 멋진조화를 이루고있다 관광객 들에게는 소매치기와 좀도둑으로 악명이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는 군사와 전쟁을 주관하는 신인 마르스와 인간인 레아실비아의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레므스와 로물루스에 의해서 건국 되었다고한다 태어난후 테베레강에 버려진 쌍둥이 형제를 암늑대가 젖으로 키웠다고 전해지며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같은 로마를 세운 시조로 널리알려진 에피소드이다 테베레강 하류에 접해있으며 대부분이 구릉지대로 이루어져있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7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발전한 영원의 도시이다 이탈리아의 정치,문화의 중심지이며 주요산업은 관광업으로 연간 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고대부터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있듯이 육지,수상교통의 중심지로 로마를 기점으로 이탈리아의 모든 교통이 발달 되어있다 로마는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발칸 반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의 영향으로 가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한국과 비슷한 기후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보다 겨울이 좀더 따뜻하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의 일곱 언덕중의 하나로 로마의 건국신화속 장소로 로마의 언덕중에서 가장 오랜역사를 가진곳이다 늑대의 젖을먹고 자란 로물루스가 이곳에처음 나라를 세웠다고한다 그때부터 포로로마노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팔라티노는 황제들과 귀족들의 거주지였던 곳이기 때문에 고급 주택들이 많았다 로물루스의집,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궁전터,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경기장 등의 흔적을 찾아 볼수있다 또한 네로의 궁전도 이곳에 있는데 로마 대화재때 불에 타게되자 네로는 그원인을 기독교인 들에게 있다고여겨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세 시대에는 이곳에 교회가 들어섰고 부유한 귀족들의 정원이 세워졌다 그중에는 16세기중엽 알렉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이 만든 파르네세 정원도 있는데 산책하듯이 둘러볼수있다 또한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포로로마노의 모습과 대전차 경기장의 모습이 아름답다 2008년3월 팔라티노 언덕에있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궁전이 일부 개방되었다 이곳은 약200억원의 예산을들여 복원한 곳으로 입장에 제한이있으며 이궁전은 예전 로마건국 신화의 주역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기거했다
↓ 키르쿠스막시무스는 이탈리아 팔라티노 언덕과 아벤티노 언덕사이에 움푹파인 곳에 기원전 600년경에 목재로 만들어진 거대한 타원형 광장으로 고대로마 제국에서 가장큰 전차 경기장이었다 원래 로마의 에트루리아 왕들이 경기와 오락을위해 지었으며 BC50년경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약2만칠천명을 수용할수있는 규모로 재건하였다 그후 25만명까지 수용할수 있도록 확장 되었고 549년을 끝으로 마지막 전차경기가 벌어졌다 영화 벤허의 대전차 경기장면을 촬영 하기도 하였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라틴어로 대현 경기장을 의미한다 2006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한 날에는 이곳에서 밤새도록 축제가 열리기도 하였다
↓ 진실의입 영화 촬영지가 이곳 산타마리아 인코스메딘 성당 안에있다
↓ 진실의입은 보카델라(입)베리타(진실) 광장에있는 DC500년대에 건설된 산타마리아 인코스메딘 성당입구 한쪽 벽면에있는 강의신 플루비우스 얼굴을조각한 것이다 얼굴 앞면을 둥글게새긴 대리석 가면이다 고대 로마의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던 것이었다고 하나 확인된것은 아니다 조각상은 수염이있는 남자의 얼굴로 눈과코 입이 뚫려있어 이구멍으로 물이빠졌던 것으로 추정하고있다 진실의 입이란 이름은 조각상의 입에 손을넣고 거진말을 하면 강의신 플루비우스가 손을 잘라 버린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중세 시대에는 일부 영주들이 사람들에게 손을 넣게하고 몰래 잘라 버리기도 했다는 이야기도있다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햅번이 출연한 1953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로마의휴일"에 나오면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로마의휴일"에서 오드리햅번과 그레고리펙이 콜로세움 주변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고 바로이곳에 코스메딘 성당의 진실의 입으로가서 손을넣으며 천진스럽게 장난을치는 장면때문에 이곳이 더욱 유명해졌다
↓ 산타마리아 인코스메딘 성당안의 모습이다 1500년이 넘었지만 계속 보수하면서 지금까지도 건재하고있다
↓ 헤라클레스 신전은 기원전 6세기 말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신전이 "테론" 집권기에 처음으로 지어진 신전 이었다고 하는 극장도 있었다 또한 이 신전에서 발견된 엔타블러처는 기원전470~460년대나 기원전 5세기의 것으로 올라간다 한 가설은 이 신전이 히메라전투 이전에 짓기 시작하여 수십년에 걸친끝에 완료 되었다는 것이다 폴리아이노스는 테론 집권기에 아크라가스 외곽에서 지어지고있는 아테네 신전을 언급했는데 비록 아크로폴리스 안에 새로운 신전이 있었음에도 그 신전을 헤라클레스의 신전으로 여길수있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아나스틸로시스와 프로나오스 및 오피스토도모스 크기의 도리스양식 기둥과 켈라로 이뤄진 이건물은 이 세개의 층단위에 서있다 천장으로 올라가게하는 계단이 위치한 프로나오스와 켈라 사이에 들어간 필론의 첫번째 예시이다 기둥들은 꽤나높고 주두들은 넓다 동쪽에는 넓은제단의 잔해들이다
↓ 포로로마노로 올라가는 언덕길이다
↓포로로마노의 고대 로마의모습
↓ 팔라티노 언덕과 연결 되어있는 포로로마노는 고대 로마시대의 민주정치와 상업,법률의 중심지였다 포로로마노는 여러 황제를 거쳐오면서 발전했지만 5세기경 로마가 분열되면서 이곳 대부분의 건물들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여러시대를 거쳐온 다양한 시대의 흔적들을 만날수 있는곳이다 얼핏보면 페허와같은 모습이지만 지금까지도 발굴작업과 복원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며 예전의 번성했던 로마의 모습을 엿볼수있는 장소이다 현재 잔해들이 거의 원형을 잃어버린 것이 많아서 새롭게 볼수있는것은 없지만 예전 로마인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살았던 곳이다 이 포로로마노의 전설에의하면 로마를세운 로물루스는 인구가 너무 적은것이 고민이었다 그래서그는 캄피돌리오 언덕위에 아쉴룸 이라는 성벽을 만들어 외부에서 피신해온 도망자 들이나 범죄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지만 인구를 늘리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가장 좋은방법은 자식을 많이 나아야 하는것인데 문제는 로물루스의 추종자들 중에 여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민끝에 기가막힌 묘수를 생각해냈다 로물루스는 축제를열어 로마 주변에사는 사비니 부족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여동생이나 딸들을 꼭데려 오라하여 축제가 절정에 이를때 사비니 사람들이 술에 완전히 곯아 떨어지자 로마의 장정들은 사비니 여인들을 모조리 납치해 버렸다 정신을차린 사비니 남자들은 모두 쫓겨나고 납치된 사비니 여인들은 로마 장정들에게 강제로 집단결혼을 당하자 사비니 남자들이 완전무장을 하여 납치된 여인들을 구하러 로마로 쳐들어왔다 로마군과 사비니군이 싸우려하자 이미 로마 장정들의 아내가되어 자식까지 낳은 사비니 여인들은 태어난 아기들을 번쩍들고 싸움을말려 어쩔수없이 서로 손을잡고 평화적으로 결합 되었다는 이야기가있다
↓ 포로로마노의 모습
↓ 캄피돌리오언덕 광장에있는 누오보 궁전
캄피돌리오 광장은 로마의 7대언덕중 하나인 카피톨리노 언덕에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로마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주피터 신전이 이곳에 있었다 거의 폐허와 같았던 이곳이 르네상스 시대부터 복구되면서 미켈란젤로가 이 광장의 건축을 맡아 황량하던 광장을 지금처럼 활기차게 바꾸어 놓았다 이 광장은 16세기 미켈란젤로의 건축물중 가장 뛰어난 곳으로도 손꼽히며 광장에서 이어지는 계단 역시 미켈란젤로가 직접 디자인 했다고한다 광장을 바라보고 정면에있는 건물이 바로 시청사인데 시청사를 중심으로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콘세르바토리 궁전과 누오보 궁전이있다 위에서보면 계단까지 합쳐저 마치 한송이의 꽃과같은 이광장은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의 걸작이다 누오보 궁전과 콘세르바토리 궁전은 현재 카피톨리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고대 로마의 조각품 다수와 회화작품을 소장 하고있다 광장 중앙에있는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원본도 이 박물관에있다 광장을 지나 계단을 내려오면 오른편으로 또다른 계단이 있는데 이계단을 오르면 복권에 당첨된다는 속설이있다 계단 바로위에는 산타마리아 다라코엘리 성당이있다
↓ 현재 로마시 시청사로 사용되고있다
↓ 누오보 궁전
↓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 보이는 기마상은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복제품이며 원본은 마주보고 있는 콘세르바토리 궁전에 소장하고있다
↓ 캄피돌리오 광장 계단위에 자리한 산타마리아 다라코엘리 성당은 캄피돌리오 대성당 이라고도 불리며 카피톨리노 언덕위에 세워져있다 이성당이 들어서기전 카피톨리노 지역은 요새와 주요여식을 섬기는 신전이있던 언덕 이었다 높은곳에 세운 요새를 하늘과 동일시 했기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으며 로마에서 지어진 마지막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이성당은 비잔틴 성직자들이 거주하게 되는 574년까지 귀족과 평민의 교회였으며 838년부터는 베네틱도 수도회 소속 이었다 19세기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독립기념관)을 건축할때 많이 훼손되었고 교회앞에는 작은 광장이 있는데 둥근모양의 오벨레스크가 세워져있다
↓ 캄피돌리오 광장을 내려오자 누군가 지나가는지 교통 통제가 이루어 지고있다
↓ 고대 로마시대의 거주 공간인 아파트식 건물이다
↓ 베네치아 광장으로 전면에 희게보이는 건물은 제2차대전 후에 베네치아 건물과 똑같이 복제한 건물이며 현재 아랍은행이 자리하고있다
↓ 베네치아 광장은 많은 도로들이 집중 되어있어 로마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다 광장 전면에는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이있고 1885년에 디자인해서 25년에 걸쳐 건축하여 1911년에 완성된 이 기념관은 이탈리아 통일(1870년)의 위업을 달성한 초대국왕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를 기념하여 세운것이며 현 이탈리아의 상징이라고 할수있다 르네상스 초기 건물로서 이곳에서 무솔리니가 20여년간 머물렀으며 이 베네치아 궁전의 발코니에서 제2차대전 참전을 선포했다 매년 6월2일 이광장에서 이탈리아 통일기념 행사가 거행된다
↓ 이탈리아 초대국왕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를 위해세운 기념관(조국의제단)
↓ 판테온 신전
↓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든신"한자어로 하면 "전신(全神)"이라는 뜻으로 다신교인 고대 로마에서 모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위해 만든 신전이다 르네상스 3대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건물이라고 칭한곳으로 죽어서 여기에 묻히기를 희망했으며 현재 그의 묘가있다 이 판테온 양식의 지붕인 돔은 이탈리아 전역 어디에서나 성당이나 건축물의 훌륭한 교본으로 사용되었다 이돔 양식은 현존하는 로마 건축물중 가장 오래 되었으며 그 원형을 잘 간직하고있다 판테온은 기원전 27년에 아그리파 (아우구스투스 대제 즉 케사르를 계승한 인물인 옥타비우누스 대제의 사위)가 만든것이다 신전으로 사용되다가 80년에 화재를 입었으며 이후 하드리아 누스황제(약120년대)때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때 남쪽을 향해있던 건물의 문을 북쪽으로 향하게하여 로톤다 광장을 조성하였다 판테온에는 총16개의 기등이있는데 기존의 이탈리아 건물들의 기둥과는 다른색의 화강암이며 코린트 양식을 갖추었다 609년 비잔틴의 포카스 황제가 교황 보나타치오 4세에게 이건물을 공식적으로 기증했다 이를받은 교황은 이건물을 아그리파가 세웠다는 내용의 글을 써놓았다 입구에있는 청동문은 이민족이 침입한 5세기때 신성 로마제국 시대의 약탈과 이후 바디칸 건축시에 사용되어 지금 보는것은 1500년대의 것이다 위로는 지름9m의 구멍이 뚫려있으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43,3m이고 바닥의 지름도 43,3m이며 1873년에 복원된 것이다 판테온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콘크리트로 만든 아치로 골격을 형성하고있다 그리고 아래부분의 벽은 두껍고(5.9m) 위로갈수록 얇아져서 건축물의 하중을 최소화했다 꼭대기의 벽두께는 1.5m이다 들어 가자마자 오른쪽으로 이탈리아 건국의 영웅인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의 묘가있다 성모마리아상 아래는 천재 화가인"라파엘로"의 무덤이있다 판테온에서 나오자마자 작은 바들과 이집트 여신인 이지스 신전의 오벨리스크가 있는 로톤다 광장이 보인다 이광장은 1578년에 기존의 공터를 개축해서 만든것이다
↓ 판테온 신전 내부
↓ 로톤다 광장에서 바라본 판테온과 오벨리스크
↓ 판테온 신전 바로앞 로톤다 광장에는 오벨리스크가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19대왕조 파라오 람세스 2세때 만들어진 것인데 헨리오폴리스의 태양신 신전앞에 있다 한쌍의 오벨리스크중 하나를 로마로 옮겨왔는데 이후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근처 이시스 세라피스 신전에 두었다가 1711년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조각가 필리포 바리깅니가 만든 분수대에 옮겨놓았다 로마에는 오벨리스크가 13개가 있는데 그중 8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고 5개가 로마시대 직접 만든것이다
↓ 판테온 신전 근처에있는 1946년에 생긴 에스프레소 유명커피점 타자도로커피숍이다 이 커피숍은 이태리 3대 커피숍중의 하나이다
↓ 트레비 분수
↓ 트레비 분수는 고대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명한"처녀의샘"으로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물을준 한 처녀의 전설을 분수로 만든것이다 분수의 정면 오른쪽위에 이런 일화를 담은 조각품이있다 고대 로마시대는 풍부한 수원과 총14개의 거대한 수도망이 있었고 로마 전역에 물을 공급했지만 서 로마제국의 멸망이후 많은 이민족들이 침입하면서 이 수로망을 파괴했다 그로인해 물부족 현상이 발생했으며 이런 물부족은 15세기 이후에 들어서면서 새로이 로마를 재정비 하려던 교황들이 여러 수도와 분수를 만들면서 해소되었다 그중에 제일 유명한것이 바로 이 트레비 분수이다 평범했던 이분수는 1732년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니콜라 살비에게 명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트레비분수의 아름다움은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최고의 걸작품 이라고 할수있다 이 트레비분수가 유명하게된 이유는 영화"로마의휴일"에서 스페인계단이 유명해 졌듯이 영화"달콤한인생"에서 주인공인 마스트로 이안니와 여주인공이 분수에 뛰어드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레비분수의 중앙에있는 근엄한 모양의 부조물은 바다의신인 "포세이돈"이며 양쪽에 말을 잡고있는 두명의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토이다 종종 테베레강이 범람해서 이곳까지 물에 잠길때가 많자 바다의신을 만들어 이를 막고자 했다는 이야기도있다 분수 왼쪽에 날뛰는 말은 풍랑을 상징하고 오른쪽의 말은 고요한물을 상징하며 양쪽에있는 4개의 여인 조각상은 4계절을 상징한다 예전 로마 제국에서는 전쟁터로간 애인의 무사귀환을 기도하며 이곳에 동전을 던졌는데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하나던져 들어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오고 두개가 들어가면 운명의 사랑을 만나고 세개가 들어가면 그사람과 결혼 한다는 속설이있다 던져진 동전은 국제빈민 구호단체 등에 보내는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 스페인 광장에있는 계단위 건물이 트리니타 데이몬티 성당이다
↓ 스페인광장 계단
↓ 가운데 앉아있는 자리가 영화"로마의휴일"에서 오드리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자리이다
↓ 스페인 광장은 17세기 교황청 스페인 대사가 이곳에 본부를 두면서 스페인 광장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광장은 영화"로마의휴일"에서 오드리햅번이 광장의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광장은 수많은 세계적 예술가들이 쉬어가던 곳이었는데 괴테,발자크,키츠,셸리,바그너 등이 즐겨찾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속 주인공처럼 이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을수없다 유적의 보존을위해 주요 관광지에서의 음식물 습취를 금지하고 있기때문이다 17세기 베르니니의 아버지인 피에트로가 만든 스페인 계단은 137개의 계단과 3개의 테라스로 구성 되어있다 계단 아래에있는 바르카치아 분수(난파선의분수)도 그가 설계했다 계단위에는 트리니타 데이몬티 성당이 있으며 계단에 앉아서 내려다보면 앞쪽으로 뻗어있는 콘도티 거리가 보인다 로마 쇼핑의 결정체라고 할수있는 콘도티 거리에는 다양한 명품브랜드 점들이 모여있어 스페인 광장과함께 언제나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 바르카치아 분수
↓ 명품 브랜드 점들이 모여있는 콘도티거리
↓ 100년이넘은 아이스크림점
↓ 아이스크림 가계앞거리
↓ 콜로세움의 모습이다
↓ 콜로세움은 이탈리아 어로는 콜로세오이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로물루스가 건설 하였으며 이후 최초의 황제가된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로마는 세련된 예술의 시대로 접어들어 궁정건축을 비롯한 대형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68년 네로의 자살로 아우구스투스의 혈통이 끈어지게 되자 후계 자리를놓고 벌어진 투쟁에서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가 승리했다 그는 원로원 출신이 아니라 평민 출신으로 황제에 오른 사람이다 그는 황제가된후 의도적으로 선대황제 시대의 궁정예술과 결별했다 그의시대의 초상들은 남자답지만 그다지 세련되지 않고 건축물 대부분은 민중을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평민을 강조했다 이런 목적으로 건설된 건축물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콜로세움이다 로마의 상징이라 할수있는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의 유적중에서도 그규모가 가장크다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 극장으로 콜로세움 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있다 "거대하다"라는 뜻을가진 콜로사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경기장옆에 네로황제가 세운 높이30m의 거대한 금도금상 콜로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있는데 전자가 유력하다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네로시대의 이완된 국가질서를 회복한뒤 네로의 황금궁전 옆에있던 인공호수 자리에 세울것을 명하면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콜로세움은 그의아들 티투스 황제가 80년에 완공하였다 콜로세움 건설은 한편에서 네로가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으며 콜로세움 완공 축하를위해 100일동안 경기가열려 그때 5000마리의 맹수가 도살 되었다고 한다 총5만5천 여명을 수용할수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기장이 그시대에 지어졌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80여개의 아치문을 통해 관중들이 입장하는데 30분,퇴장하는데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개폐형 지붕과같은 놀라운 시설을 갖춘 콜로세움은 2007년 새롭게 선정된 세계7대 불가사의중 하나이다 1층부터 도리아,이오니아,코린트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띠고있는 이 경기장에서는 맹수의 시합이나 검투사 경기가 개최되었고 황제부터 노예까지 모든 로마시민들이 함께 관람할수 있었다 물론 신분에따라 자리가 달랐으며 1층은 귀빈석 2층은 일반석 3층은 입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하에는 칸칸이 나눠진 맹수들의 우리와 여러방들이 있었는데 천장을 나무 바닥으로 만들어 지상과 지하를 분리시켜 지하방에는 맹수뿐만 아니라 검투사,사형수들이 갇혀있었다 3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검투사들의 경기가 계속되다가 450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경기를 중지 시키면서 끝이났다 이후 콜로세움은 지진의 피해를 입기도하고 중세 교회를짓는 재료로 쓰이기위해 외벽 절반이상이 뜯기게되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못해 아쉽지만 2000년전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의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없다
↓ 콜로세움 뒤의모습
↓ 콜로세움 안의모습
↓ 콜로세움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