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바디칸(로마)

은 척 2019. 4. 9. 14:11

로마 바디칸 교황청 관람(2019.03.23일)

↓ 로마 교항청으로 가면서 차창밖으로 바라본 풍경



↓ 바디칸 성벽

↓ 바디칸 박물관 입구  

로마 안에있는 바디칸시 또는 교황청 이라고도 하는 바디칸 시티는 전체면적이 0.44km 인구는 약800명으로 전세계에서  가장작은 독립국이다 이곳은 전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이라는 성스러운 의미가있다 이외에도 미켈란젤로의 불굴의 명작인 "천지창조"와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등 책에서만 보던 훌륭한 예술 작품들을 직접 감상할수있는 이탈리아 미술의보고 이기도하다 바디칸시티는 이탈리아 로마시내 테베레강 서안에 자리잡고있다 한번에 30만명을 수용할수있는 성베드로 광장 앞에는 도로위에 흰색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것이바로 이탈리아와 바디칸을 구분짓는 국경이다 바디칸은 그러나 1859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을 일으킨 빅토로 엠마누엘이 1870년 교황의 군대를 격파하고 로마시를 점령 함으로서 교황의 세속적 권력 행사는 종지부를 찍게되었다 이탈리아가 19세기들어 근대 통일국가로 탈바꿈 하면서 교황청 직속 교황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1929년 이탈리아와 교황청 주변지역에 대해 주권을 인정하는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함으로서 독립국이 되었다 "바디칸"이라는 국명은 그리스도교 발생 이전에 내려온 오래된말로 테베레강 옆에위치한 "바디칸언덕"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현재 바디칸의 영토권은 성베드로 대성당과 로마의 성당,궁전을 포함한 13개건물,로마 동남쪽 120km 지점에있는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하계관저에 국한된다 영토내에는 성베드로성당,대성당,교황궁전,관청 바디칸 박물관,도서관,은행,방송국,인쇄국,철도역,우체국,시장 등이있다 하나의 국가이지만 국방은 이탈리아에 위임 되어있고 소수의 스위스 근위병이 지키고있다 과거 침략시절 스위스 용병들만이 남아 목숨을걸고 교황을 지켰다고한다 그후 지금까지 약100여명의 스위스 국적의 신체 건강한 젊은 용병들이 아직도 창과 칼만으로 바디칸을 지키고있다 이스위스 용병들이 입고있는 화려한옷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이다 재정은 이탈리아 정부의 보조금및 바디칸 소유의 부동산과 바디칸 은행의 투자수익 그리고 세계각국의 카톨릭 협회로부터 보내온 기부금으로 재정을 충당하고있다 대부분의 물품을 이탈리아로부터 들여오는데 물품에대한 관세는 부과 되지않는다 바디칸의 정체는 교황제이며 교황제 아래 수상격인 국무장관 추기경이있다 카톨릭교는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하여 공인된이래 영향력을 계속 확대하여 1859년 교황이 이탈리아 중앙부를 중심으로 18000㎢에 달하는 지역과 300만명 이상의 주민을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 솔방울 정원 이라고도 하는 피나의 안뜰


↓ 라파엘로의 작품

↓ 바디칸 솔방울 정원의 교황청을 상징하는 솔방울

↓ 환경파괴를 상징하는 지구본


↓ 피나의 안뜰



↓ 지나온 미술관 건물이다



↓ 팔각형의 안뜰 이라고도 부르는 벨베데레 정원으로 율리우스 2세의 소장품 이었던 주요 조각 작품들이 전시 되어있다

↓ 태양의신 아폴론 동상은 천년가까이 땅에묻혀 있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네로 황제의 별장에서 발굴되었다 원래는 그리스 청동상 이었는데 이조각상은 대리석으로 만든 복제품이다 아폴론 조각상은 잘 다듬어진 근육과 남성의 윤곽으로 최고의 예술품이며 이상적인 남성 인간상 이라하며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리면서 예수님 얼굴을  이 아폴론 동상을 모델로 했다고한다 이장면은 아폴로가 활을쏘고 난후의 모습이다

↓ 강을 지키는 물의신 티그리스 조각상으로 처음 발견당시 머리,오른팔,왼손 등 여러 부분이 없었는데 미켈란젤로가 복구 했다고한다

↓ 바디칸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세계3대 박물관으로 특히 고대 로마시대의 유물과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걸작들은 최고로 손꼽히고있는 곳이다 바디칸 박물관은 1506년 산타마리아 마조례궁전 근처의 포도밭에서 라오쿤상이 발견되고 당시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조각을 전시한것이 시초가 되었다 또한 율리우스 2세는 바디칸에 당대 최고의 박물관으로 자리잡게된 계기가 되었다 바디칸 박물관이 처음 일반에 공개된것은 18세기 후반으로 역대 교황의 궁전으로 사용되던 바디칸궁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공개한것이다 소장된 유물만도 며칠동안 봐도 모자랄만큼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있다




↓ 로톤다의 방(원형의방) 천장으로 미켈란젤로가 판테온의 돔을 모델로해서 만들었다









↓ 시스티나 예배당은 이곳에서 교황을뽑는 추기경들의 모임인 콘클라베가 열린다 이 시스티나 예배당이 유명한 이유는 "미켈란젤로"의 천장 벽화와 벽화 때문이다 당시 르네상스 전성기의 최고의 화가이던 보티첼리,기를란다이요,코시모로셀리,시뇨렐리,폐루지노,핀투리키오 등의 그림도있다 이 시스티나 예배당은 1475년에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의 주문으로 착공하여 1483년8월15일에 완성되었다 시스티나 라는말은 이성당을 만든 식스투어 4세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교황을 뽑기도하며  피신처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원래 당시 토스카나 지역에서 가장 세력이있는 메디치 가문이 혹시 침략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탈리아까지 원정을 다니던 오스만 투르크의 마호멧2세의 침략을 대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 지도회랑의 화려한 천정벽화






↓ 라파엘로의 작품들



↓ 성베드로 대성당

성베드로성당은 성베드로가 64년 로마 대화재로 인한 민심 이반을 두려워한 황제 네로가 화재를 그리스도교 교인들의 소행으로 몰아부처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던 시기에 순교하였다 순교한뒤 네로의 대전차 경기장의 북쪽 바디칸 이라는 이름의 어원인 바티카누스 평원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지금 바티칸이 있는자리는 그옛날 공동묘지이며 이후 2세기 중엽에 바로 그의 무덤위에 작은 성당이 세워졌다 성경의말처럼"너를 베드로라 부르니 너위에 내성당을 세우리라 너에게 천상의 왕국을 열수있는 열쇠를 주노라"의 의미 그대로 그의 묘지위에 성당이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고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9년에 어느정도 모양을갖춘 성당을 세웠다 그규모는 지금의 바디칸 대성당의 본당규모 정도였다 그러나 로마제국의분열,게르만족의 침입 심지어는 826년경에 아랍인들까지 이곳을 점령 하기도 하였다 이당시 846년에 현재의 바디칸벽이 성으로서의 외벽을 쌓았다 당시 교황은 이곳이아닌 라테란 궁에서 거주 하였으며 아비뇽 유수시대(1305-1377)기간동안 로마는 철저히 버려지게 되었고 새로이 교황권을 복구할 명분도 생기게 되었다 율리우스 2세가 1505년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였던 브라만테 에게 성전건축을 위임 하였으나 실제는 1400년대 중반에 이미 니콜로5세 교황에 의하여 성전 재건축 계획이 세워져 니콜로5세는 건축가인 베르나르도 로셀리노에게 이일을 일임 하였는데 이때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콘스탄티 노플을 침공하여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다 베드로성당 건축을 위임받은 브라만테는 성당의 재건축을 위해서 로마와 인근 지역에있던 수많은 성당과 유적지에서 재료를 뽑아쓰며 기존의 근대 성당의 모습을 완전히 없애버려 파괴의 건축가라는 오명을 듣게 되었으나 1514년 브라만테의 사망으로 이일은 미켈란젤로에게 넘어갔다 1547년 바디칸 대성당 건축예술 주임으로 임명을 받게된 미켈란젤로는 생전에 사이가 나빴던 브라만테의 설계가 사라 지리라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브라만테가 만든 설계의 원래로 돌아가 외벽의 무뉘모양,조각등의 벽감만을 수정하였다 그리고 교황의 제단위에 웅장한 쿠폴라(돔)를 설계 하였으나 완성은 그의 제자였던 자코모델라 포르타에 의해 마무리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당시 예술가로서 최고의 직위에 있었으면서도 불구하고 오직 예술과 신의사랑 그리고 베드로의 영광을 위하여 죽을때까지 이작업에 매달렸다 1607-1612년까지 카를로 마데르노가 성당의 전면을 검토하고 손본후 큰 변화없이 지금까지 성베드로성당은 건재하고있다 마데르노는 대성당의 앞면을 만들면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을 보이지않게 만들어 버린 실수를 하였으나 차후 베르니니가 성당의 광장을 만들면서 지면을 경사지게 함으로서 돔이 보이게 수정하였다 성베드로 대성당의 중앙제대인 교황의제대는 바로 성베드로의 무덤위에 세워져있고 이자리가 성베드로의 무덤임을 알리는 베르니니의 청동 발다키노가 교황의 제대를위해 서있다




↓ 성베드로 대성당은 바디칸시국 남동쪽에있는 대성당을 말한다 바디칸 대성당 이라고도 부르며 성지가운데 하나이자 기독교 세계의 모든교회 가운데 가장 거대한 교회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개신교를 제외한 기독교의 전승에 따르면 서기67년에 순교한 예수의 열두제자 가운데 한사람이자 로마의 초대주교 즉 교황 성베드로의 무덤위에 대성당을 건립하였다 성베드로 대성당이 로마의 수많은 교회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으뜸 교회는 아니다 로마교구의 대성당의 명예를지닌 교회는 산조반니인 라테라노 대성당이다 성베드로의 시신이 대성당의 제대 아래에 묻혀있는 까닭에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 오고있다 대성당은 4세기이래 이장소에 있었다 대성당의 건설은 1506년4월18일에 시작되어 1626년에 완공되었다 성베드로성당은 그 종교성과 역사성 에술성 때문에 세계적인 순례장소로 유명하다 르네상스 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주임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지은 건축 작품으로서 당대의가장 거대한 건물로 여겨진다 로마의 모든 초창기 성당들처럼 성베드로 대성당 역시 입구가 동쪽에 있으며 후진은 서쪽 끝에있다 성베드로 대성당은 산조반니인 라테라노 대성당,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산파올로 푸오리 레무라 대성당과 드불어 로마의 주요4대 성전 가운데 하나이다 6만명 이상의 사람을 수용할수있는 대성당 내부에는 500개에 달하는 기둥과 400개가넘는 조각상이 세워져있고 따로 분리된 44개의 제대와 10개의 돔이있으며 1300개에 달하는 모자이크 그림들이 벽면에 장식 되어있다 현재의 대성당은 바디칸시국 벽안에 있으며 교황의 주거지와 인접해 있을뿐더러 교황이 집전하는 대부분의 의식이 열리는 장소 이기때문에 교황의 가장 중요한 성당으로 여겨진다




↓ 성베드로 교황의 무덤으로 이곳에서는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수있다


↓ 성베드로 무덤위에 있는 발다키노는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명에의해 만들어 졌는데 옥좌를 덮는것 우리말로는 천개(天蓋)라고하며 발다키노 높이가 30m 천정을 덮는 청동무게가 37톤에다 전체적인 청동 무게는 약9.5톤에 달한다

↓ 성베드로의 청동상은 아르놀포디 캄비오의 작품으로 성베드로의 무덤위 앞에있으며 성베드로 축일인 6월29일에는 이 청동상에 금실로 수놓은 제의를 입히고 성베드로 사도에 대한 예식을 하고있다 중세기부터 순례자들은 성베드로의 청동상 오른발에 입을맞추며 기도를하는 전통때문에 오른쪽 발가락은 거의다 닮았는데 그이유는 베드로청동상의 발에 입맞춤을 해야 전대사를 받을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 화려한 성베드로 성당 내부의 모습










↓ 성베드로 광장













↓ 아래 건물의 동그란 원이 있는곳이 교황의 집무실이며 손을 흔들어 주는곳이다





↓ 교황이 거주하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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