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베네치아(이탈리아)

은 척 2019. 4. 19. 14:32

2019.03.22일 베네치아 관광

↓ 베네치아 지도

↓ 베네치아로 여객선을 타고갈 항구이다



↓ 베네치아 항구에 도착하여 도보로 거리를 돌아보고 있다

↓ 비발디가 생활하였던 건물이다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직자이며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가이다 붉은 성직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4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된 "사계"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있다 생애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의 바이올린 주자였던 조반니 바티스타의 아들로 태어나 부친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웠다 15세로 신부가 되었으나 몸이약하여 숨이차 미사를 올릴수가 없어 음악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비발디는 1703년부터 1740년에 걸쳐 베네치아의 여자 고아원겸 음악학교 이던 피에타 고아원에 근무 했으며 1716년에는 합주장이 되었다 비발디의 사계중 봄은 이탈리아 음악 양식인 소나타와 협주곡으로 사계절중 하나인 봄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 육지의 도로역할을 하는 수로이다


베네치아는 영어로 베니스라고 하는데 소설가 뒤마의 말처럼 죽기전에 반드시 가보아야 하는 도시다 베네치아는 수상도시 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원래부터 수상에 지은것은 아니며 현재 116개의 섬들이 409개의 다리들로 연결 되어있다 따라서 동남아의 수상 가옥과는 다르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 새로이 들어온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들이 해안만 기슭에 마을을 만든데서 시작되어 점차 해안바닥에 말뚝을 박아 섬을 만들었다  6세기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섬이 그 중심이되고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였다 처음 비잔틴의 지배를 받으면서 급속히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하여 7세기 말에는 무역의 중심지로 일어섰고 도시 공화제아래 독립적 특권을 행사하였다 베네치아에는 세레니시마 가문이 있었는데 이가문은 1202년에 엔리꼬 단돌로 총독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기 위해 4차 십자군 지원을 요청한 당시부터 세력을 급속히 확대중계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이후 베네치아는 소위 중계무역 도시 즉 홍콩과같이 잘살게 되었다 베네치아는 15세기부터 밀라노,피렌체와 더불어 이탈리아를 장악했으나 1797년에 베네치아는 자치권을 잃게되는데 나폴레옹이 침략하여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에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의 주인인 세레니시마 가문은 몰락하였다 그러다가 1866년에 베네치아는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왔으며 문화적으로 살펴보면 베네치아는 주로 비잔틴 양식과 북쪽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고딕양식 그리고 이탈리아 중부에서 영향을 받은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곳이다 한때는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 공화국의 요지였고 오늘날에는 주로 운하 예술과 건축이 독특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알려져있다 베네치아에 있는 많은운하는 100개섬을 이어주는 수로역할을 한다 베네치아의 건축물은 이탈리아,아랍비잔틴,고딕,르네상스,마니에리슴 바로크양식 등이 모두 나타난다 수세기동안 베네치아의 사회정치 중심지였으며 산마르코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으로 손꼽힌다 홍수,침강 대기오염 등으로 옛건축물과 예술품들의 노후화가 계속되어 1960년대 중반에 국제연합 교육과학 문화기구가 과학적 기술적 방법을 활용해 베네치아 시를 구하자는 전 세계적인 운동을 시작하였다

 *비잔틴 건축양식은 비잔틴 제국의 건축으로 비잔틴 제국의 기초를 닦은것은 유스티니아누스(527-565)이며 돔형식과 모자이크 건축 기술이다 비잔틴 양식의 특징을 집약하고있는 성당은 콘스탄티노플 이라 불리었던 터키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대성당과 베네치아의 성마르코 대성당이있다

↓ 뒤에보이는 탄식의 다리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라 할수있는 유명한 다리로서 작은 운하를 사이에두고 두칼레 궁전과 프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있다 궁전에서 재판을받고 감옥으로 가던 죄수들이 한숨을 쉬는곳이라고 하여 "탄식의다리"로 불리는 곳이다 베네치아는 홍수가 많이나는데 지하 감옥은 홍수가날때 물에 잠겨 버리기 때문에 이다리를 건너 감옥에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래서 이다리를 지날때 세상과 하직 인사를 하는것이다 카사노바가 탈옥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카사노바는 베네치아 출신인데 워낙 잘생기고 언변이 뛰어나 여러 여성들과 두루 사귀었다고 한다 결국 풍기문란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가 사귀던 여성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었으며 그는 가면 무도회때 돈으로 매수한 간수로부터 가면을받아 가면을쓰고 자연스럽게 감옥을 빠져 나갔다고 한다 그는 탈출하고 난후 산마르코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에서 거피도 마시고 갔다고 하는데 그카페는 아직도 영업중이다 오늘날 탄식의 다리는 베네치아 여행중 멋진사진을 담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 산마르코 광장


↓ 산마르코 광장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위치한 광장으로 베네치아의 가장 유명한 광장이며 베네치아의 정치적,종교적 중심지 역할을하던 광장이다 베네치아 에서는 산마르코 광장을 단순히 "광장"이라고 지칭한다 산마르코 광장과 피아제타 그리고 로마광장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공공 공간들은 광장이라고 불리는 대신에 들판들 이라는 뜻을가진 캄피라고 불렀다 작은 광장이라는 뜻을가진 피아제타는 베네치아 석호방향 남동쪽으로 산마르코 광장이 연장된 것이다 산마르코 광장은 피아제타와 함께 베네치아의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를 형성했고 보통 하나처럼 여겨졌다 전세계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주변에 산마르코 성당과 두칼레 궁전이있다 베네치아 광장은 항상 물이찾다가 빠지곤한다 이광장은 12세기에 만들었는데 워낙 많이 부식되고 망가져서 15세기에 새로이 손을봤다 지금도 끊임없이 공사중이며 주위를 돌아보면 광장 중앙에 큰 시계탑이 보인다 이탑은 15세기에 만들었으며 쟘파올로와 글란카를로 라니 에리가 디자인 하였다 24시간, 계절,달의주기 등을 보여준다

↓ 산마르코 광장의 시계탑(종탑)


↓ 두칼레 궁전은 제노바의 전성기때 만든 궁전으로 피사,베네치아와의 해전에서 연전 연승하여 지중해의 상업권을 장악하게 되었을때 만들어졌다 당시 오베르토 스피놀라와 코라도 도리아는 1291년에 산로 렌조와 산마테오 성당 사이에있는 모든 건물들을 사들여 3년후 궁전의 주요부분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이궁전은 1339년부터 두칼레라고 불리게 되었고 제노바의 첫제독인 시몬보카네 그라가 여기서 머물게 되었다 14세기에는 궁전이 확장 되었으며 내부 광장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다른 많은 건물들도 설치되었다 16세기에는 많은 중세시대 건물들이 사라지게 되었고 궁전은 공화국을 상징하기 위해 외양을 바꾸었다 1591년에 건물의 외양이 현대화 되었으며 거대한 홀이 정원옆에 설치되었다 이중계단도 생겨나고 궁전의 서쪽은 바로 대회의당과 중회의 당으로 통하는 구조로 지어졌다 같은 건물에있는 예배당은 단순한 직사각형 방으로 만들고 다양한 프레스코 화들이 여왕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1777년의 화재로 궁전의 일부(대회의당)가 소실 되기도 하였다 쥬셉페이 솔라는 1875년에 리구리아의 무역을 묘사하는 프레스코화를 남겼다 또한 건물의 중심부를 재건축할때 티치네제 시모네칸 토니의 디자인이 사용되었다 유명한 신고적 양식으로 만든 건물이며 천장은 돔형태로 되어있다 19-20세기에 이루어졌던 작업들은 궁전을 새롭게 만들었으며 주변과도 격리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오르란도 그로쏘에 의해 만들어졌던 특별한 정문은 궁전의 동쪽에있는 페라리 광장과의 구역을 구분짓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궁전이 최종적으로 완공되었을 당시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이었다 이후 건축가 죠반니 스팔라의 프로젝트 덕분에 궁전은 거의 옛날 모습으로 원상복구 되었다 이 건축물의 특색은 건물들을 서로 이어주며 "떠있는길"이라 불리며 철로 만들어진 나선형 구조물이다

↓ 두칼레궁전



↓ 산마르코 광장

↓ 산마르코 성당의 종탑


↓ 플로리안 카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베네치아의 상징중 하나이다 플로리아노 프란체스코니가 1720년12월19일에 베네치아의 승리를 뜻하는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판테 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는데 곧 그의 이름을 플로리아노의 베네치아식 이름인"플로리안"을따서 개칭하였다 개업이후 플로리안은 지금까지 영업을 멈추지않고 운영을 이어왔고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로 이어져 오고있다 이카페는 많은 유명 인사들이 방문한 곳으로 유명한데 카사노바는 당시에 플로리안이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카페란점을 이용해 이카페를 드나들었고 괴테,바이런경,카를로골도니,마르셀프 루스트,찰스디킨스 등 여러유명 인사들이 이카페를 자주 방문하였다 플로리안 프란체스코니의 손자인 발렌티노 프란체스코니가 19세기 초까지 운영을 맡은후 그의아들 안토니오 에게까지 카페가 물려졌지만 1858년 빈첸조포르타,조반니 파르델리,피에트로 바카넬로가 이카페를 인수 하였으며 당시 카페는 복구가 어느정도 필요한 상태였다 플로리안의 복구를 위하여 로도비코 카도라가 복원 작업및 내부장식을 새로이 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당시 복원에 배정된 비용에대해 세인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초기에 개업했을때 두개의 방으로 시작한 카페 플로리안은 18세기중엽 두개의방을 추가했는데 이방들은 각각 저명인사의 방,원로원의 방,계절의 방 혹은 거울의방,동양의방 혹은 중국의 방으로 불렸다 이중 저명인사의 방은 줄리오 카를리니가 그린 카를로 골도니,마르코폴로,티치아노를 비롯한 10명의 저명한 베네치아 인들의 그림이 걸려있다 원로원의 방에는 "국가를 지도하는 진보와 문명"이라는 주제로 예술과 과학의 세계를그린 패널들로 벽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방은 베네치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식당이라는 뜻의 일리 스토란테 라고도 불렀으며 이는 19세기에 이방이 카페의 식당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방은 극동 지방에서 영감을 받은 파스쿠티가 그린 이국적 여인들과 연인들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20세기초 추가된 마지막 방인 자유의 방은 아치형 천장과 징두리 벽판 수작업으로 채색한 거울로 장식 되어있다



↓ 산마르코 성당은 이집트 지역에서 가져온 여러유물과 산마르코의 유골을 안치한 납골당의 목적으로 9세기에 세웠다 11세기에 롬바르디아 양식이 가미되어 리모델링 되었고 전체적으로 비잔틴 양식을 지니고있다 돔은 총5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마르코의 업적을 기리는 12-13세기의 그림들이있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오스트리아로 넘어갈때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에서 유물을 모두 가져갔다 그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그때의 전리품들을 돌려주게 되었는데 다 돌려받지는 못했다 산마르코 성당입구 위에있는 4마리의 청동 말들은 베네치아가 1204년 콘스탄티 노플에서 가져온 것이다 현재의것은 복제품이며 진품은 성당2층의 박물관에 있다 이말들은 현재 여러 유럽의 장식물로 많이 쓰이는데 로마에있는 법원 건물에서 라든지 프랑스의 루부르 박물관의 카루젤 개선문 등지에서 볼수있다 산마르코 성당의 종탑은 높이가 99m로 9세기 무렵부터 있어왔으나 무너지는 등 손상을 받았다 1511-1514년까지 다시 지어졌지만 1902년에 잘서있던 탑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지금 보는탑은 1912년에 다시 지은것으로 바닷바람을 많이 맞아서 무너지기가 쉽다고한다


↓ 두칼레궁전 앞바닷가 광장

↓ 앞 바다건너 보이는 성당은 산조르지오 마조레 성당으로 산조르지오 섬 전체가 성당부지 라고한다


↓ 두칼레궁전 행랑


↓ 곤돌라를 타고 골목을 돌아보았다







↓ 주민들이 이용하는 수상택시



↓ 곤돌라를 타고 내리는곳이다

↓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 수상택시를 타고 베네치아를 돌아본 모습들이다



↓ 카그란데 건물로 1536년 산소비노가 만든 베네치아 귀족상인인 코르네르가의 집이었는데 지금은 미술관으로 쓰고있다


↓ 바르바리고 궁전으로 16세기 대주교 바라바리고가 지은 건물인데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가 이집에서 태어났으며 19세기에는 무라노섬의 크리스탈 장인들의 총본부였고 지금은 호텔과 주택으로 사용 되고있다



↓ 뒤에 보이는 아카데미 다리는 길이48m로 1854년 철교로 만들어 졌으나 석교로 개축하려다 예산이 부족하여 1933년 임시로 산타루치아 앞 스칼치 다리의 설계도를 가져다가 목교로 만들었다

↓ 말리피에로 궁전의 정원인데 정원 좌측건물은 말리피에로 의원이 살던 집으로 카사노바가 자주 드나들며 살던 집이었다

↓ 주스티니안 궁전 이였는데 현재는 베네치아의 "카포스카리"대학의 외국어 학부 건물이다 세종 어학당이 이곳에있다

↓ 뾰족탑을 가진 발비궁전은 니콜로 발비에 의해서 만들어진 건물이다 나폴레옹이 거주했다는 궁전으로 현재는 베네토 주의회 사무실로 쓰이고있다









↓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의 운하 중에서도 가장좁은 곳을 선택해 놓여진 다리가 바로 리알토 다리인데 원래는 목조로 지어졌지만 16세기말 안토니오 다폰테의 설계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다리로 바뀌게 되었다 이다리 근처가 세익스피어의 희곡"베니스의상인"의 주요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명작속 배경인 데다가 이 다리위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아름답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다리아래 쪽에는 채소와 과일,어패류를 판매하는 시장이있다







↓ 세계최초의 합법적인 카지노가 이곳 베네치아에서 시작 되었다는 카지노 건물의 모습





↓ 스칼치 다리

↓ 베네치아의 산타루치아 열차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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