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비수구미~평화의댐~두타연(2014여름휴가)

은 척 2014. 8. 9. 18:54

금년 여름휴가는 평소 좀처럼 가보기 힘든 최북단 민통선 지역의 볼거리를  찾아가 돌아 보기로 하였다

↓ 휴가동안 돌아본 코스


↓ 춘천으로 가는도중 찍은 여명하늘


↓ 화천 수력 발전소는 북한강 수계를 이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댐수로식 수력 발전소로 수도권 지역의 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하고있으며 1945년 제1기를 시작으로 여러차례 발전 용량을 늘려 현재에 이르고있다

↓ 수력발전소 앞 전경

↓ 화천의 꺼먹다리로 1945년경 화천댐과 발전소가 준공 되면서 새운 다리로 폭4.8m 길이204m의 철골과 콘크리트로 축조된 교량 바닥에 몰타르먹인 목재를 대각선으로 설치하는 공법으로 목재 부식을 최소화 하였으며 단순 하면서도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공법을 사용하여 현대 교량사 연구에도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교량 상판이 검은색 몰타르 목재라서 꺼먹다리로 불리운다  또한 여기는 화천 파로호 산소100리길의 반환점이 되는곳이다

 화천 파로호 산소100리길은 화천읍 붕어섬에서 시작하여 북한강을 따라 올라와 꺼먹다리를 반환점으로 돌아가는 42km의 자전거와 산책로로조성된 길이다 이길은 물안개를 감상 할수있는 수변길,북한강위로 지나가는 수상길(부표를 뛰워만든길)원시림을 관통해가는 숲속길과 연꽃길,야생화길 등 볼거리가 넘쳐나는 산책길이다

↓ 파로호 산소 100리길의 일부인 북한강 건너 대이리 마을을 잊는 푼툰 다리이다 이 다리는 부표를 뛰워 만든 것으로 홍수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불어 위험할때는 강 밖으로 걷어올린다

↓ 화천 산소100리길의 일부인  "숲으로의다리" 는 2009년 10월 칼의노래 작가인 김훈 선생이 이름을 지었으며 숲속길로 진입하는 의미를 담고있다  

↓ 화천댐

↓ 파로호 휘호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톨령의 친필 휘호이다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의미의 파로호(破f虜湖)는 1951년 4월과 5월에 보병 제6사단과 해병 제12연대 장병들이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중공군 3개군을 완전 격멸하여 수장 시키는 전과를 올림으로써 당시 5만kw의 화력발전소(당시 남한의 총 발전설비 용량은 20만kw)를 되찾게 된것을 크게 기뻐하며 현지를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뉴스 영화를 제작 하게하고 댐 산정에 파로호 라고 친필 휘호를 남긴데서 유래 되었다

↓ 멀리서 본 화천댐

↓ 화천에서 평화의댐을 가기 위해서는 넘어 가야할 해발 1194m의 해산령이다  현재는 해산령 터널이 있어 시간이 많이 단축되고 있으며 터널을 나가면 바로 해산령 쉼터가있다



↓ 해산령 쉼터인데 여기서 보이는 철망폔스 안으로 비수구미 가는 6km의 트래킹 길이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산악회에서는 많이 찾는 등산코스로 비수구미에서 평화의 댐까지 걸어가는 하루 등산로로 이용 하고있다

↓ 비수구미로  들어가는 길은 해산령에서 6km 의트래킹 코스와 차량으로 평화의 댐 밑에있는 선착장까지 와서 보트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가야 하는데 도로가 비 포장이며 길이좁아 차량 교행이 어려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우리는 트래킹 코스는 시간이 부족하여 어렵지만 차량으로 선착장까지 와 걸어서(편도30분소요) 비수구미에 들어갔다

↓ 비수구미로 가는 선착장

↓ 비수구미로 들어가는 산길



↓ 비수구미 마을 입구에 있는 출렁다리

↓ 두 가구가 살고있는 비수구미 의 안에 있는집

↓ 2013년 7월 KBS 인간 극장에서 방영 되었던 이곳은 38년을 이 마을에서 살아온 김영순씨의 집으로  비수구미 산채 비빔밥 집을 운영하고있다

↓ 직접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 반찬이 19가지로 비빔밥 메뉴이며 가격은 1인당 만원이다


비수구미라는 마을의 유래는 두가지 뜻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신비로운 물이빚은 아홉가지의 아름다운 경치와  물이 굽이쳐 흘러가는 살아 숨쉬는 계곡의 후미진 오지라는 뜻이며 또하나는 조선시대 무단 벌목을 막기위해 세워놓은 비문(非所古未禁山東標)에서 비수구미가 유래 되었다고 한다 비수구미는 한국 전쟁이 끝나고 외지인들이 모여들어 화전을 일구며 살기 시작했던 마을 이었으나 1978년대 화전이 금지 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다 떠나고 지금은 두 가구만 살고있다 비수구미는 그동안 접근이 힘든 오지마을 이었으나 2013년 7월 인간극장"웰컴투비수구미"를 통해 이곳에서 38년을 살며 산채 비빔밥 집을 운영 하고있는 김영순씨 가족이 소개 되면서 발길이 잦아 지고있다

↓ 마을안에서 바라본 마을입구 출렁다리


↓ 출렁다리 입구 암벽에 붙어있는 말벌집

평화의 댐은 그당시 1986년 북한에서 금강산댐 건설 계획이 발표된후 평가한 결과 이 댐이 완공될 경우 공업 및 생활용수 공급이 중단되고 만일 9억톤의 물이 한꺼번에 방류되면 서울 및 수도권까지 침수되고 서울 올림픽까지 방해 할수 있다고 건설,문화공보부,통일원 장관이 합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금강산 댐에대한 대응으로 평화의 댐을 건설 하게되었으나 문민 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 감사원 감사결과 저수량의 과대 평가로 인한 정권안보 차원에서 조급한 과잉 대응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 되었다 그당시 국민의 성금을 모아 완공한 이 댐은 저수용량 29억톤,총길이410m 높이 80m저폭이 260m인 대규모 댐으로서 최근에는 수해시 홍수조절 기능이 입증 됨으로서 재 평가의 대상이 되고있다

↓ 댐안의 모습

↓ 댐 안쪽의 비목공원

↓ 댐 하류에는 공사가 계속 되고있다

↓ 평화의댐 안내도

↓ 평화의 댐 표지석

↓ 평화의 댐 조형 벽체 작품은 2005년 10월 조각가 이경순 의 작품으로 평화의 댐의 역사적 상징성과 현재 분단된 남북의 평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있는 작품으로 전체 길이가 135m 높이7m 중앙부의 최고 높이가 11m이며 돌의 종류는 우리나라의 화강석(포천석)을 사용하였다

↓ 세계평화의 종으로 이종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에서 수집된 탄피들을 모아만든 종으로 평화,생명,기원의 의미를 담고있다 쇠 1만관(37.5톤)으로 만들어진 세계평화의 종은 남북 통일의 염원을 담고자 1만관중 1관을 분리한 9.999관으로 주조 되었다가 통일이 되면 때어낸 1관을 추가하여 세계평화의 종을 완성할 계획이다 높이4.7m 지름2.76m 이며 종의 형태는 신라범종 형이다 2009년 공원 개장식때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구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참석해 의미를 더하기도했다

↓ 한국 수자원 공사의 평화의 댐 건설공사 참여자 명단

↓ 평화의 종 앞에서

↓ 평화의종 옆에있는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동판 사진과 핸드 프린팅으로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과 2001년 유엔이 수상자로 선정 되었을 당시 유엔총회 의장 이었던 한승수 전 총리도있다


↓ 측면에서 본 평화의종

↓ 한국 수자원공사의 평화의댐 물 문화관

↓ 물 문화관 공원에 있는 조각상

↓ 평화의 댐 공원에있는 비목 공원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가곡인 "비목"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5년에 조성 되었다

↓ 비목당으로 한국 전쟁당시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에서 젊은이들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쳐 산화한 곳으로 무명 용사의 돌 무덤을 배경으로 탄생한 가곡 비목의 발상지이다 이곳에 세계 평화를 위해 산화한 젊은이들의 넋을 기리고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소망을 담아 우리 후손 들에게 평화와 인류공동 번영의 이상을 전승 하고자 이 탑을 세우게 되었다

↓ 비목의 유래는 1960년대 중반 평화의 댐에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백암산(1179m)계곡 비무장 지대에 배속된 한명희라는 청년 장교가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6,25전쟁때 전사한 무명 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 무덤을 발견하고 돌 무덤의 주인공이 전쟁당시 자기 또래의 젊은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비목(碑木)의 노랫말을 지었으며 그후 장일남 님이 곡을붙여 비목이라는 가곡이 탄생 되었다 1996년부터 매년 호국보훈의 달 6월에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비목 문화제를 개최 하고있다

비목 공원의 수국


↓ 아카데미 안보관

↓ 댐 안쪽 비목공원에서 바라본 댐 뚝과 평화의 종

↓두타연 입구에있는 두타연 갤러리는 소지섭의 미 공개사진,소지섭이 직접찍은 사진과 다양한 소지섭 관련 작품들이 전시 되어있고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영화"오직그대만"의 회사원으로 소지섭이 입고 등장했던 영화의 의상들이 전시 되어있다 소지섭 길은 지난 반세기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아 신비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강원도 DMZ 일대를 배경으로 2010년 출간된 소지섭의 포토 에세이집"소지섭의길"이 출간되면서 발단 되었으며 천혜의 자연을 간직 하고있는 양구군의 아름다움과 따뜻함에 반한 소지섭은 양구군의 자연을 통해 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가장 좋아하는 숫자 51을 소지섭 길의 총 연장으로 확정 하였다 이길은 포토 에세이집의 촬영지와 자연 경관이 뛰어난 6개 코스51km이며 혼탁한 도심속 바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쉬어 갈수있는 공간이다

소지섭길 1코스: 두타연 갤러리-월운저수지            4코스: 광치자연휴양림-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

             2코스: 도솔대대앞-제4땅굴-펀치볼          5코스: 양구읍 정림교-한반도섬-강원외고-종합운동장

             3코스: 양구생태공원-산양증식 복원쎈터   6코스: 국토정중앙천문대-석천리선착장

↓ 소지섭 갤러리 내부


↓ 두타연 이목정 안내소로 두타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기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 신청서를 작성하여 입장료를 낸다음 군 기관의 철저한 검문후 (자동차 트렁크 안에도 검사하여 위험 물질과 주류는 압수해 놓았다가 나올때 돌려준다) 두타연으로 들어 갈수있다

↓ 이목정 안내소에서 절차를 밟은다음 차량으로 3.7km 안으로 들어와있는 두타연 관리 사무소와 주차장

↓ 두타연을 다 돌아 보려면 12km인데 걸어서는 3시간 자전거로 70분이 소요된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아래 안내도의 붉은선 안에만 돌아보게 되어 무척 아쉬움이 남았다 약 40분정도

↓ 두타연 관광 안내도

두타연은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 지류의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수량은 만치 않지만 주위의 산세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오염 되지않아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있다 약1000년전 두타사란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된 이름이며 휴전이후 50여년간 출입이 통제되어 도로변에 원시림을 연상캐하는 숲과 생태계가 그대로 보존 되어있다 "두타"라는뜻이 삶의걱정을 떨치고 욕심을 버린다는 뜻을가지니 자연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않는 이곳과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수있다 전국의 계곡과 명승지들이 사람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인간이 남긴 전쟁의 상처가 역설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보존 할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금강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계곡을 따라 산책하듯 걸어가는 18km의 생태 관광코스는 자연속에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훌융한 산림욕 코스가된다

↓ 조각 공원에 진열해놓은 무기들

↓ 산책로 외에는 들어 갈수가없다

↓ 두타연 전망대에서 위로 찍은 풍경

↓ 탐방로

↓ 징금다리에서


↓ 두타연 출렁다리





↓ 녹슬은 철모

↓ 두타연 소지섭 길

↓ 두탸연 폭포

↓ 멀리서본 출렁다리

↓ 두타연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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