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굴산(682m)
일시: 2014.09.09일 08:15분 덕천동 종가집돼지국밥 앞 출발 차량이동시간: 2시간25분 소요
도상거리: 12.5km 산행시간: 5시간(10:45분 출발-15:45분 하산)
코스: 황계폭포입구(1206번지방도)-자연정-황계폭포-합천이씨묘-황계골입구갈림길-밤나무단지-갈림길-하봉기-상봉기마을회관-청강사-코끼리바위-주능선갈림길-허굴산-갈림길-안부-임도-밤나무단지-허굴산농장-갈림길-밤나무단지-황계골입구갈림길-택계2교-황계폭포입구
↓ 등산 들머리인 황계폭포 입구(1206지방도)
↓ 남명(조식)선생 시비
남명 조식은 1501년7월10일 연산군 7년 삼가현(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토동)에서 승문원 판교 조언형의 둘째 아들로 태어 났으며 그와 쌍벽을 이루는 퇴계 이황과 같은해에 태어났다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한성부의 고관 이었으나 그의 증조부 생원 조안습의 대에 이르러 합천 삼가현 판현에 자리잡아 살았다 조식은 외가에서 태어나 살다가 아버지의 벼슬 살이에 따라 5세무렵 한성으로 이사해 아버지 에게서 글을 배웠다 조선중기의 성리 학자이고 영남 학파의 거두인 조식은 어려서 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역학,지리,그림,의약,군사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 명종과 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 받았으나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제자를 기르는데만 힘썼다 경상도 삼가현에서 양반 집안으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숙부가 문과에 급제 함으로서 관료의 자제가 되어 사림화적 성향의 가학을 이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30세까지 서울집을 비롯한 부친의 임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혔고 후에 명사가 된 인물들과 교제 하였다 조선 중기의 큰 학자로 성장하여 이황과 드불어 당시의 경상좌,우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여러차례 관직이 내려 졌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았으며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 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였다 그의 제자들로는 임진 왜란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정인홍,김우옹,정구등 수백명의 문도를 길러 냈으며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하였다 1561년 지리산 천왕봉 아래 덕산으로 낙향하여 산천재를 짓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독특한 학문의 체게를 이룩 하였으며 사후 사간원 대사간에 추증 되었다가 북인 집권후 1613년(광해군)에 의정부 영의증에 증직되었다
↓ 남명 선생이 시를 지으며 쉬었다는 자연정
↓ 등산지도
↓ 남명 선생이 이 폭포에서 시를 지었다는 황계폭포
↓ 한 농가의 가을배추
↓ 등산길은 청강사 방향으로 열려있다
↓ 청강시 입구
↓ 청강사 (내부는 둘러보지 못했다)
↓ 물 봉선화
↓ 청강사 약사선원 왼쪽으로 등산로이다
↓ 쑥부쟁이
↓ 코끼리바위
↓ 능선 전망대에서
↓ 멀리 황매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 허굴산 정상
↓ 능선 전망대에서